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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제주에서 만난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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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DEAWAY JEJU #1 제주 식물


이름 모를 풀꽃과 새싹들로 창연하게 빛나는 신록의 제주에서.

 

(사진) 화창한 봄날의 반짝이는 녹차밭.

 

스마트폰 사진첩에 꽃 사진들이 넘쳐난다는 것,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를 검색해본다는 것, 벚꽃 잎이 소나기를 맞고 우수수 떨어질 때면 괜스레 서글퍼진다는 것. 이는 눈가에 진 잔주름 하나보다 더 명징한 노화의 증거이죠 그러나 지난날 스쳐 지났던 길가의 들꽃 한 송이에 눈이 떠지고, 봄이면 어김없이 싹이 튼다는 사실에 오늘의 혹독함을 견딜 수 있게 된 것에서 그것이 쌓인 세월의 보상임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5월의 신록이 보다 더 반가운 오늘,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제주의 들과 숲을 보러 떠났습니다.

 

1. 윤중로가 아닌, 제주에서 보는 벚꽃도 남다르다.  2. 수국은 아직 이른 철.  제주에 사는 포토그래퍼가 작년에 찍어놓은 환상적인 수국 사진으로 대신한다. 3. 바람에 너울대는  아름다운 청보리밭. 4. 제주는 어딜 가나 유채꽃 천지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노오란 유채꽃. 

 

제주의 들과 밭

요즘 제주는 어딜 가나 꽃밭입니다. 꽃을 보고 싶다면 그냥 어디든 달리면 됩니다. 동백꽃, 벚꽃, 유채꽃, 수국 등이 시간차를 두고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니까요. 조용한 국도를 달리다가도, 잘못 들어선 동네의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도, 꽃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조금 달리다 멈춰 서고, 조금 달리다 멈춰 서기를 반복했죠. 넋을 놓고 바라본 것은 들판에 핀 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물결치는 청보리밭의 군무와 수확하지 못한 채 내버려둔 넓고 넓은 무밭에서, 어린 잎이 돋아난 녹차밭의 반짝임에서, 오름에 오르다 만난 황소들의 점잖음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운 대자연의 위엄과 품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달 전 인터뷰 했던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발길이 닿는 곳에 잠시 멈춰서서 봄을 발견하라던. SNS를 점령한 제주도의 포토 스폿을 굳이 찾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주의 어디든 달리며 그 방법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찬란한 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1·3. 신비로운 모습의 원시림. 2·4. 서울 근교의 산에서는 보지 못했던 신기한 모양새의 식물들.

 

제주의 숲

태초의 제주를 만나고 싶다면 숲으로 들어갑니다. 난대와 온대 식물이 함께 자라는 울창한 산림지는 제주의 태곳적 모습을 간직한 살아 있는 과거입니다. 교래자연휴양림은 제주의 천연 원시림과 자연 지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곶자왈 지역에 조성한 자연휴양림입니다. 사계절 다른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곶자왈을 지나 초지를 가로질러 큰지그리오름에 다다르면 한라산까지 보이는 오름 산책로, 그리고 완만한 숲길을 걸으며 다양한 식생과 곶자왈의 생성 과정을 볼 수 있는 생태 관찰로로 나뉩니다. 무릎이 아픈 우리는 2시간 반 코스의 오름 산책로 대신 곶자왈의 살아 있는 식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완만한 생태 관찰로 길을 걸었습니다. 화산석을 비집고 태어난 나무들이 산책로를 걷는 내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돌을 휘감고 땅 위로 뿌리를 노출하는 이런 나무들의 습성을 ‘판근현상’이라고 합니다. 다 같아 보여도 조금씩 다른 고사리들, 촉촉하고 싱그러운 이끼들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고, 굽이굽이 휜 나무들의 능선을 타고 자라는 덩굴식물과 시장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기한 모양새의 버섯들이 가는 길마다 걸음을 멈추게 하네요.

 

1. 만리향. 2·3·4. 끝내 정확한 이름을 밝혀내지 못한 꽃. 제보받습니다. 5. 넝쿨 산딸기 꽃. 6. 고사리 종류들.

 

7. 고사리 종류들 8. 녹차 잎. 9. 동백. 10. 로즈메리 꽃. 11. 민들레. 12. 암대극.

 

13. 먼나무. 14. 완두콩. 15. 자주괴불주머니. 16. 천남성. 17. 청보리. 18. 한라봉.

 

제주의 꽃과 풀

그리고 여기,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잠시 멈춰 바라본 제주의 꽃과 풀, 나무들을 사진으로 담아왔습니다. 하마터면 ‘무명씨’로 표기될 뻔한 이 식물들의 이름을 식물 세밀화가인 이소영 작가(@soyoungli)의 도움으로 대부분 찾아줄 수 있게 되었어요. 잠시 시간을 내어 사진에 실린 이 식물들의 이름과 얼굴을 찬찬히 살펴봐주길 바랍니다. 제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식물들이지만, 그 얼굴에 담긴 특별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입니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고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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