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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선이 만들어낸 율동, 앙리 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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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다양한 감정의 색을 화폭에 옮긴 앙리 마티스의 작업 방식은 

작곡가가 화음을 연구하듯 회화를 구성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좌) Tresses of Stéphane Mallarmé <Poésies>, Etching, 1932, Work by Henri Matisse © Succession H. Matisse (우) Arabesque, Lithograph on Chinese Paper, 1924, Work by Henri Matisse © Succession H. Matisse

(상) Icarus, Lithograph after a Cut-out Gouache, 1947, Work by Henri Matisse © Succession H. Matisse (하) The Knife Thrower, Lithograph after a Cut-out Gouache, 1947, Work by Henri Matisse © Succession H. Matisse

 

드로잉, 회화, 조각, 판화, 컷아웃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본 세상을 그린 작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는 자유분방한 붓 터치와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색을 통해 외부 세계를 묘사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마티스 그림의 강점은 단연 ‘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빛깔의 인상을 단순한 색이 아닌, 주체적으로 생각한 강렬한 색깔로 표현했어요. 다시 말해, 본래 사물이나 풍경이 갖고 있는 자연색을 무시하고 스스로 느낀 주관적 감정에 따라 색을 칠했는데, 이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던 당시 미술계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령 당신이 마티스에게 초상화를 의뢰하면, 그는 당신의 피부색을 붉거나 파랗게 칠할 것입니다. 마티스에게 그림은 실제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주체적인 형태로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좌) Bédouine au Voile Dénoué, Aquatint, 1947, Work by Henri Matisse © Succession H. Matisse (우) Odalisque with Brazier and Bowl of Fruits, Lithograph on Arches Velin Paper, 1929, Work by Henri Matisse © Succession H. Matisse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한 헌신

마티스가 자연의 색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스승인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1826~1898)의 영향이 컸습니다. 모로는 19세기 후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로 대변되는 현실 묘사 중심의 미술에서 내면 세계에 대한 주관적 표현 중심의 미술을 구축한 인물입니다. 동시대 풍경이 아닌 역사와 신화에서 주제 의식을 찾는 것은 물론, 캔버스를 긁거나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등 자유분방한 양식을 실험한 예술가답게 자신의 제자들에게 특정한 미술 화풍에 구속당하지 말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것을 강조했어요. 마티스는 이러한 모로의 가르침을 본받아 고전주의와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다양한 화풍을 잇달아 탐구하며 자신만의 혁신적 회화 기법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마티스만의 그림은 형체를 단순화하고 원색을 대비시켜 매우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게 특징입니다. 마티스의 그림은 곧 20세기 초반 프랑스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으나 모든 새로운 화풍이 그러하듯 비평가와 관람객은 그의 작품을 야만적 색채의 그림이라 깎아내리며 혹평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죠. 강한 혹평은 곧 미술계의 새로운 아이콘을 만들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클로드 모네의 그림이 인상에 가깝다고 혹평받은 이후 ‘인상파 미술가’들이 미술계를 평정했듯, 마티스의 그림이 야수 같다며 혹평받은 이후 ‘야수파 미술가’들이 미술계를 평정했습니다. 비록 그들의 전성기는 5년이 채 되지 않을 만큼 짧았지만 말이죠.

“내가 실험하고 싶은 건 평평한 색면色面 위에 작곡가가 화음을 연구하듯 회화를 구성하는 일”이라고 했던 마티스의 말을 통해 그의 작업 방식을 유추하면, 마티스는 색채로 곡을 연주하듯 그림을 그렸을 것입니다. 그에게 색깔이나 형태는 악보 위의 음표이며, 각각의 음표가 조화를 이뤄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그가 꿈꾼 가장 완벽한 순간의 아름다운 장면일 거예요. 실제로 마티스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힘차게 그은 선과 색채·형태·무늬의 대담한 사용, 유려한 움직임으로 귀결되는 공통적 특징은 존재하지만, 특정 미술 장르에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상황에 맞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그것이 그를 화가이자 조각가, 판화 제작자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할 만큼 몸이 안 좋아진 순간에는 유화물감 사용에 제약이 따르자, 종이를 오리거나 붙여 작품을 만들었을 정도. 예술가에게 고통은 이렇게 또 다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Costume for Mourners in the Balets Ruses production of ‘Song of the Nightingale’, Felt with velvet patches, 1920 © LES BALLETS DE MONTE-CARLO / Andres Serrano, Father Trobatas, Cibachrome, Silicone, Plexiglas, Cadre Bois, 2015 © Andres Serrano, Courtesy of the Artist and Nathalie Obadia Gallery / Andres Serrano, Matisse Chapel, Cibachrome, Silicone, Plexiglas, Cadre Bois, 2015 © Andres Serrano, Courtesy of the Artist and Nathalie Obadia Gallery

예술 인생을 담은 전시

마티스는 50년간의 예술 활동을 통해 방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덕분에 그의 전시는 매번 새로움을 가져다줍니다. 서울에서도 앙리 마티스의 전시가 열렸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주최한 것으로 그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함인데, 후기 작업인 ‘컷아웃’ 작품을 메인으로 선정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컷아웃 작품은 유화물감으로 그린 게 아니라 종이를 오리고 붙여 만든 것이죠. 즉, 그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표현한 창작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전시 타이틀이 ‘재즈와 연극’입니다. 삶과 사랑, 그리고 고통을 흥겹게 노래한 재즈처럼 그의 예술 인생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완벽한 서사와 감동을 주는 한 편의 연극처럼 관객에게 다가옵니다. 이번 전시에선 마티스가 자신의 고통 속에서 아름다움을 피워낸 것처럼, 범유행 시대의 슬픔에 희망을 더하기 위해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컷아웃 작품 <재즈> 시리즈를 비롯해 드로잉, 석판화, 발레 공연을 위해 디자인한 무대의상, 로사리오 성당 건축 등 다채로운 오리지널 작품 120여 점을 선보입니다. 그간 쉽게 마주할 수 없었던 마티스의 후기 예술 세계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과 선이 만들어낸 율동이 돋보이는 특별한 전시 구성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그의 전기 작품에선 강렬한 색채로 인해 단순한 선이 부수적 요소로 보이기도 했는데, 이번에 전시된 후기 작품을 볼 때는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율동을 표현해내는 선이 작품의 중심 역할을 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수많은 습작 후에야 가장 단순한 선을 그릴 수 있듯, 마티스가 그려낸 단순한 선에는 그의 예술 인생이 응축돼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만들어낸 색채는 늘 그렇듯 빛을 잃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얻은 값진 교훈은 자신의 과거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전진하는 행동이죠. 마티스의 작품이 늘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타인과 세상이 아닌, 자신의 예술과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editor 서재우 (매거진 B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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