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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작가 노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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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대로

흘러들어 온 이미지를 수합하고 그려낸 후 다시 어디론가 흘려보내는 사람.

흘려보낸 그 양만큼 쌓인 계단 위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 작가 노상호의 얘기입니다.



노상호는 매일 그림을 그립니다. 전날 인스타그램 속을 유영하다가 ‘이만큼’ 차곡차곡 쌓아뒀던 이미지를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그리기 시작하죠. 다 그리고 나면 인스타그램(@nemonannet)에 업로드하고 작업을 마치는데요. 점심 시간쯤 되면 끼니를 챙기고, 오후에는 본인이 말한 대로 ‘입금된 일’들과 그 밖의 잡무들을 착착 해치웁니다. 이 루틴은 몇 년간 매일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있죠. 하루를 분배해 책정한 일들을 소화해내는 작가 노상호의 일과는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돌아가는 우리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흘러갑니다. ‘혁오 밴드의 앨범 재킷을 그려준 그 작가’로 유명해진 노상호의 그림이 혁오 밴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도 익숙한 이유는 그가 그린 이미지들이 뉴발란스, 참이슬, 휘슬러 등 일상에 툭툭 놓인 물건의 이야기에도 종종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송은아트큐브, 일민미술관, 아라리오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등 다양한 곳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관람객들을 만나고, 10월 25일에 끝난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전시에선 ‘다른 곳’이라는 주제로 또래 작가 4명과 함께 그룹전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매일 SNS에서 보여준 ‘이만큼’의 그림을 뚝 떼어 걸쳐놓은 후 관객들이 슥슥 만지고 돌려보게 내버려두었죠. 스스로를 ‘얇고 팔랑거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그 자신이 여과지가 되어 매일 쌓인 이미지들이 스며들게 하고, 걸러진 것들은 미련 없이 흘려보내죠. 하지만 흘려보냈다고 해서 남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노상호는 매일 스며들었던 어떤 것들이 쌓여 그 위에 우뚝 서 있음을 몇년에 한 번 문득 문득 발견합니다. 매일 꾸준히 한 것들의 축적이 반 계단, 또 반 계단 위의 자신을 만들었음을 느낄 때 내일 또다시 그려야 할 이유를 찾게 됩니다. 하루가 그저 속절없이 흘러간다고 느껴진다면 노상호가 오늘 그린 그림을 찾아보길 바라요. 그저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 오늘 흘려보낸 우리의 하루가 내일 반 계단 위의 나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죠.



얼마 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막을 내린 그룹전 <다른 곳 (Elsewhere)>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언택트 시대에 전시를 연다는건사뭇다른느낌일것같다. 

사실 SNS와 작업장을 왔다 갔다 하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오히려 언택트 시대라고 해서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느낌을 잘 받지 못했다. 작업 홍보나 업무를 언택트로 진행 해 이미 언택트 시대 이전부터 언택트로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웃음) 그러나 관람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아무래도 이전과는 피드백이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언택트 이전의 시 대엔 전시장 여러 곳을 코스처럼 돌았다면, 요즘엔 전시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조사하고 숙 고해서 방문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전날 SNS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오전에 스캔하고, 그리고, 다시 그 작품을 SNS에 업로드하는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작가로서 그럴 법도하다.비교적 덤덤하게 언택트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날 혹은 그 전날 봤던 이미지가 내게 들어와서 그림으로 한데 합쳐지는 순환 구조를 지닌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건 시의적이기도 하면서 전혀 시의적이지 않기도 하다. 팬데믹 시대의 영향이라고 하면, 다른 인터뷰에서도 종종 말했지만 그림 속에 재난이라든지, 화재가 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는 정도다. 사실 이런 그림이 자꾸 등장하는 것도 그런걸 그려야겠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팬데믹 시대라서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많이 올리고 내 피드에 자주 보였기 때문에 그림이 그런 식으로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곳’ 이라는 주제와 ‘그룹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의 특색에 있어서 고심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다른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5명의 작가가 한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려 했는지 궁금하다.

다섯 작가가 다 오다 가다 너무 많이 만나왔고, 전시도 너무 많이 함께했던 사람들이었기에 우리끼리의 고민이 존재하긴 했다. 그간의 전시와는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건지, 혹은 달라지지 않아도 그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니까. 만나기만 하면 그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사실 답은 없다. 이건 비단 이번 전시뿐 아니라 작가로서 본인 작업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내 작업을 1년에 한 번, 2년에 한 번 보여줄 때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변화해왔다고 생각할까, 하는 고민 말이다. 전업 작가로 산지 7년 정도 됐는데, 학생 때는 전업 작가들이 ‘만날 똑같은 것만 한다’라든지, ‘노잼이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막상 내가 작가 생활을 하다 보니 조금씩 다르게 보이더라. 매번 다른 작업을 선보이거나, 한 작 업을 계속 휘발되게 할순 없으니까 반 계단씩 올라가는 것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보여주는 게 전시라는 생각으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흔히 말하 듯 홈런을 계속쳐야 되는 건 아니니까,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과도 이런 태도에 관한 얘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회사원처럼 ‘9 to 6’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8시 반쯤 일어나서 바로 작업을 시작하는데, 끝나는 시간은 매번 다르다. 어제는 거의 9 to 11쯤 됐다.(웃음) 보통 ‘나를 위한 작업’이라고 부르는 개인 작업을 오전에 끝낸다. 전시가 있으면 조금 더 걸리긴 하지만, 보통 오후 시간은 인터뷰나 미팅, 세금을 내거나 서류 업무를 보는 데 할애한다. 거기다 최근엔 3D 이미지나 프로덕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다 보면 일반 직장인들과 비슷하게 야근도 하고. 아무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오전 시간이다. 개인 작업이 뒤로 밀리면 계속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또는 사람은 입금된 일을 먼저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웃음) 


스스로를 타이트하게 살아가는 사람, 근면 성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학생 때는 나도 되게 게으른 아이였는데, 이제 이런 궤도에 들어서니 놓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최근에 헬스하는 어떤 분이 그러시던데? 운동을 하루 쉬면 근육이 다 없어지는 기분이라 매일 하고 있다고. 나도 이런 비슷한 강박이 있는 것 같다.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버튼을 누르면 영원히 게으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 같은 불안함 말이다. 그리고 사실 ‘아티스트’라는 이미지도 굉장히 판타지화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널리 알려진 작가들은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다 출근하듯이 작업한다. 술 먹다가 갑자기 ‘지금 그림을 그려야겠어!’ 이런 사람 잘 없거든.(웃음) 일단 사회가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침에 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없고, 마감도 지켜야 하고. 이렇듯 아티스트도 사회의 일원이고 직업인으로서 일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일을 10년, 20년 지속적으로 하고자 하는, 웬만한 커리어가 쌓인 아티스트라면 다 나와 다르지 않은 일과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판타지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나는 얇은 사람, 팔랑거리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많이 해왔고, 작품 판매 방식도 좀 독특한 방식으로 했었다. 예를 들면 프린트된 이미지를 사고 싶은 만큼 뜯어 구매한다거나 jpg 파일로 판다거나 하는. 

그것까지가 작업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팔면 되겠지 했는데, 굉장히 파격적이라는 반응도 있었고, 선생님들은 금기를 건드렸다며 불같이 화를 내시기도 했다. 나 스스로는 당연히 그림을 이만큼의 단위로 그리니까 매일 이만큼씩 팔면 되지, 그리고 내일 또 그리면 되지, 이렇게 생각해서 그런 방식으로 팔았는데, 오히려 구매하는 분들이 “이렇게 사도 되는 거예요?”라고 반문하셔서 놀랐다. 결국 내가 그림을 대하는 방식과 사람들이 그림을 대하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 경험이었다. 물론 높은 금액대의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들은 고전적인 방식의 패키징을 선호하고, 젊은 친구들은 또 다른 방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나한테는 옷걸이가 액자이기 때문에 옷걸이에 걸어 그대로 패킹해 드릴 때도 있고, 때론 옷가게처럼 결제하면 매장 직원이 바로 패킹해 드릴 때도 있다. 선호하는 방식에 따라 맞춰 드리고 있어서 주변인들이 장사치라고 많이 놀린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고.(웃음)



이미지를 수집하는 게 일이고, 그것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미지에 질릴 때는 없나?

매번 질린다. 과하게 쏟아지는 이미지의 바다에서 매번 그런 생각을 한다. 전혀 새롭지도 않다. 개인 계정을 운영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한번 SNS를 끊어봤더니 너무 심심하더라.  그게 너무 싫다고 하면서도 그걸 안 보는 사람과 대화할 때 ‘넌 잘 모르지?’ 하는 마음도 있지 않나? 이미지에 질리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이미지를 안 보지도 않으니 굉장히 이중적이지. SNS의 타임라인이 이미 내 삶과 동일시돼 있기 때문에 이젠 이미지를 보는 게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드로잉에 글이나 캡션을 넣을 때도 있었는데, 글이 감상을 방해한다며 빼버렸다. 이미지의 홍수 시대에 소비될지 어떨지도 모를 ‘글’을 생산하는 직업을 가진 에디터 같은 사람에게는 절망적인 현실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바뀌는 것에 적응하고, 그 적응하는 나를 드러내는 게 정신적으로 훨씬 나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인스타그램을 넘어 요즘은 ‘틱톡’이라는 게 유행한다는데, 처음 틱톡을 보자마자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인스타그램이 처음 나왔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이거 왜 하는지 모르겠어.” 작가들끼리 저 말을 많이 했는데, 결국 우리 모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고, 작업의 맥락 속에 인스타그램 이미지가 들어오는 걸 보는 나로서는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예를 들면 내가 학부 때는 PDF를 인쇄해서 거기에 줄을 그어가며 시험 공부를 했는데, 그걸 보고 우리 엄마가 “그게 공부가 되니? 써야지!” 하셨다. 몇 년 지나 학과 조교 시절 근로 학생이 스마트폰에서 PDF를 눌러서 보고 공부하다 페이스북도 하다가 인스타그램도 하는 걸 보고 뒤에서 지켜보다 나도 모르게 “그게 공부가 되니?” 하고 엄마랑 똑같은 소리를 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아, 내가 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뿐이지, 그걸 부정적으로 생각할 이유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자마자 아이패드를 보는 애들의 물성은 우리 세대와 전혀 다를 것이다. 거기다가 “공부가 되니?” 하는 말을 하는 것보다 그걸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진 모르지만.(웃음) 또한 그 받아들임을 중간에 멈춰도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자기가 속한 세대겠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가 있는 건데, 딱히 거기서 우울감을 느껴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을 보기 위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가는 것처럼, 시대가 변해도 우리가 몸으로 직접 체험하기 위해 하는 활동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그저 다른 세계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 거기에 적절하게 섞여 살고 있는 사람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요즘 노상호를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요즘은 3D 이미지들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그게 어떻게 유행하고, 언택트 시대를 맞아 어떻게 변형되는지 보고 배우는 것에 가장 관심이 간다. 왜냐하면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2D 이미지들은 볼 만큼 봤다, 지겹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전시가 열려도 대충 사진으로 보면 어떻게 그렸겠거니 하는 감이 있고, 작품에 대한 내용은 홈페이지에 가면 있으니까 실제로 가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이건 내가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작품을 돌리게 한다거나 만질 수 있게 하는 부분을 내 전시에 반드시 넣는 이유도 인스타그램에서 이미지를 먼저 보여줘 버렸기 때문에 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들만 현실에 남게 되고 나머지는 이제 가상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 같다.  


전업 작가로 7년 정도 달려왔다. 지난 여정을 돌아봤을 때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꾸준하다는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 7년 정도 전업 작가 생활을 했지만 실제로 전업 작가라는 인식을 가진 건 정말 1년도 안 됐다. 어릴 때는 미술도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흘러가는 것, 유한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작가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일에 대한 숙고와 사물에 대한 언어를 계속 고민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잘 나가는 작가들의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이 반보씩 뭔가를 쌓아나가는 게 더 재미있는 거라는 거, 혹은 훨씬 가치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점이 나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비단 아티스트에 국한된 게 아니라,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다. 그리고 이 일은 뭔가 꾸준히 했더니 늘더라는 걸 깨닫게 해준 내 인생의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림이 3년에 한 번씩 계단식으로 느는 걸 스스로 목도하게 되는 건 살면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고, 덕분에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조바심을 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애증이 생긴다. 싫은데 너무 좋기도 한 이상한 기분. 내겐 그림이 그렇다. “너무 싫은데 너무 많이 했어.” 어른들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는데, 이런 감정을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삶이 뭔가 굉장히 복잡한 사람의 심리를 보여주는 박완서 소설처럼 돼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왜 저렇게 살까? 왜 굳이 저렇게 하지?’ 너무 싫었는데 크니까 나도 그런 사람이 돼가는 기분이 드는 거. 그리고 그게 싫지 않아지는 이상한 마음? 너무 싫었던 것들, 그런데 그게 나라는 걸 계속 발견하는 패턴 말이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임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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