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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파운데이션과 만난 신디 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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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파운데이션과 만난 신디 셔먼


고정된 틀을 깬 공간과 사진은 브랜드의 미학과 부합해 동시대의 미의식에 대해 말한다.


(좌) 무제 #604, 2019, 면, 울, 원사, 아크릴 섬유, 수은사, 루렉스 114 1/2×89 1/4 inches 직조 290.8×226.7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 2019 Cindy Sherman (우) 무제 #607, 2020, 폴리에스테르, 면, 울, 아크릴 섬유 112×86 inches 직조, 284.5×218.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 2019 Cindy Sherman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거대한 유리 구조물을 따라 들어가면, 주체 의식을 강조한 사진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전통과 혁신을 동시대의 문화로 풀어내는 패션 브랜드 루이 비통이 설립한 미술관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에서 2020년 9월 23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개최되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회고전에 관한 이야기다. 고정된 틀을 깬 공간과 사진은 브랜드의 미학과 부합해 동시대의 미의식에 대해 말한다. 셀프 포트레이트의 거장으로 불리는 사진가 신디 셔먼은 ‘천의 얼굴’로 불린다. 늘 새롭게 변주된 캐릭터로 카메라 앞에 서기 때문이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 설 때면 마치 핼러윈 데이처럼 메이크업을 하고 코스튬 분장을 한다. 어리고 순진한 소녀에서 관록 있는 중년의 모습으로 변하는가 하면, 르네상스 시대의 귀부인도 됐다가 시대와 성별을 감지할 수 없는 미상의 존재가 되기도 한다. 분명한 건 모두 동일한 사람(신디 셔먼)이라는 사실이다. 같은 인물이라도 다양한 생각과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다. 이건 누구나 이해하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이지만, 때로 세상은 그 사람을 단순하게만 판단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신디 셔먼은 여성스럽게 생겼어’라고 정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여성스럽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신디 셔먼은 특정 생김새와 단어를 통해 뭔가를 판단하는 걸 기피한다. 그녀가 자신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획일화된 메시지가 아닌 복잡성이다. 우리의 삶은 겹겹이 쌓인 층으로 이뤄진 레이어처럼 하나의 단어나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 다양한 것들이 모여 독특한 문화현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무제 필름 스틸 #13, 1978, 젤라틴 실버 프린트, 24×19.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 2019 Cindy Sherman, 무제 #224, 1990,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121.9×96.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 2019 Cindy Sherman, 무제 #582, 2016, 염료 승화 메탈 프린트, 137.2×178.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 2019 Cindy Sherman, 무제 #584, 2018, 염료 승화 메탈 프린트, 101.9×158.8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 2019 Cindy Sherman


복잡성을 통해 일깨운 자아

신디 셔먼도 다양한 모습으로 분한 자신을 통해 고정된 시선에서 탈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든 개인을 외형과 성별로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개인의 진짜 모습도 알 수 없다. 매일매일 감정에 따라 수없이 변하는 게 우리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진짜 저는 없어요.” 신디 셔먼은 줄곧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건 그녀가 특별히 유난을 떠는 ‘관종’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모습은 계속해서 변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레이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찰나의 순간이 담긴 사진 한 장으로 정의할 순 없을 것이다. 신디 셔먼은 여성 운동가로도 불린다.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들이 즐비한 패션 사진계에 경종을 울리듯 추하고 지친 여성들을 모델로 내세운 <패션 사진(Fashion Photographs)>(1983~1984), 신체와 관련된 액체 분비물, 사물, 피와 배설물 등 체액과 분비물, 마네킹 등을 사용해 신체의 유약함과 아름다운 이면의 것을 선보인 <애브젝트 아트Abject Art>(1985~1991), 모더니즘을 상징하는 15~19세기 후반 귀부인의 초상화를 패러디(여성의 가슴을 드러내거나 평범한 여성을 등장시킨)한 <역사 사진(History Portraits)>(1988~1990) 등 그녀가 줄곧 자신의 피사체로 활용한 이미지는 여성과 몸이다. 여기엔 모더니즘과 가부장적 남성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아름다운 신체가 아닌, 불쾌감을 주는 신체 내부적 요소와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여성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진정한 자아 확립과 주체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이렇게 다양성을 드러낸 사진은 시대에 보내는 메시지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모두 틀리지 않다는.


(좌) 무제 #258, 1992,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172.7×114.3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 2019 Cindy Sherman (우) 무제 #562, 2015, 염료 승화 메탈 프린트, 110.5×217.8×5.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 2019 Cindy Sherman


지금 필요한 전시

신디 셔먼은 여성 사진가 중 가장 유명한 작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사진이 지루해 보이지 않는 건 언제나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와 동시대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이 담긴 익살스러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선보이는 작품은 자신들의 철학을 동시대에 옮겨 담아 새로운 미학을 전개하는 루이 비통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해체주의적 사고를 통해 기능주의 건물을 창조하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에서 팬데믹 사태 이후 첫 번째로 선보이는 전시 작가로 신디 셔먼을 낙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의 사진은 언제나 새로운 관점을 쉽고 대중에게 유익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14년 만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신디 셔먼의 전시답게 그녀의 작품은 175점이나 된다. 이 말인즉슨, 신디 셔먼이 작업한 모든 시리즈를 볼 수 있다는 얘기일 뿐 아니라,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까지 선보인다는 말이다. 관람객은 이번 전시를 통해 신디 셔먼의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며 시대에 저항한 그녀처럼 지금 코로나19 시대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때문일까?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은 단순히 신디 셔먼의 사진만을 소개하지 않는다.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지닌 예술가 20여 명의 작품 60점도 함께 전시한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1968, 독일), 아델 압데세메드Adel Abdessemed(1971, 알제리/프랑스), 리네커 데이크스트라Rineke Dijkstra(1959, 네덜란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1965, 영국) 등 그 시대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을 선보인 예술가들의 작품은 모두 신디 셔먼(1954, 미국)의 작품과 동일선상에서 비춰진다.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그들이 선보이는 작업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선 같은 맥락이다. 오는 9월 23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열리는 <신디 셔먼 회고전>은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전시이자, 고정된 틀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울리는 경종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ditor 서재우 (매거진 B 에디터)

photo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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