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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2020. 6. 26. 10:00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이너, 문승지

OCEANS ON THE TABLE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온 가족이 환경을 얘기하는 자연스러운 삶. 

갤러리아의 '라잇!오션'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 문승지가 바라는 일상의 풍경이다.



디자이너 문승지가 스마트폰에 저장해뒀던 외신 기사 하나를 보여주었다. 지난 3월,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알려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에서 새로 발견한 심해 갑각류마저 플라스틱에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 무려 수심 6,000~7,000m에서 잡힌 이 갑각류의 소화기관에서 인간이 플라스틱 물병이나 운동복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합성 화합물인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페트PET)가 발견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해양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생명 존중의 철학을 전달하고자 갤러리아가 진행하고 있는 ‘라잇!오션Right!Ocean’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디자이너 문승지. 새파란 한림 바다가 고향집 앞인 이 제주도의 아들에게 해양오염의 심각성은 이렇듯 누구보다 더 피부에 와 닿는 문제였다. 그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레이블 ‘팀바이럴스TeamViral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는 자신의 브랜드인 ‘MUN’의 아트 디렉터, 또한 수년 전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코스COS와의 협업에서 합판 한 장으로 남는 조각 없이 4개의 의자를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디자인해 전 세계 디자인 신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또한 2018년에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 운동을 모티브로 한 <쓰고쓰고쓰고쓰자>라는 전시에서 선보인 환경을 고려한 작품들을 통해 의자 하나, 화병 하나로도 일상에서 우리 모두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종종 ‘나는 환경운동가인가?’라고 자문한다는 문승지에게 ‘그렇다’ 혹은 ‘아니다’의 이분법적 대답을 강요할 순 없을 것 같다. 환경을 생각하는 일이 모든 디자인의 기저를 이루어야 하는 이 시대 산업디자이너들의 소명을 문승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해양오염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생명 존중의 철학을 담은 갤러리아의 ‘라잇!오션’ 프로젝트에 협업 작가로 선정되어 전시를 앞두고 있다. 소감이 어떤지?

솔직히 말하면 언젠가 백화점과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해보면 좋겠다고 상상하곤 했다. 디자이너로서 내가 만든 제품들이 백화점에 입점되는 것을 넘어 이런 캠페인을 통해 전체 VMD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 기간 동안 디자이너의 색감이 거기 온 모든 사람들에게 느껴질 수 있는 사례들을 보고 동경해왔기 때문이다. 갤러리아에서 내게 이런 제안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고, ‘라잇!오션’ ‘세계자연기금(WWF)’ ‘환경오염’ 이런 키워드들이 조합돼 있었던 첫 미팅 때는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해 머리가 복잡했다.(웃음) 나는 예전부터 환경 문제나 동물 보호 문제 등에 관심이 정말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해결하려고 하는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디자이너로서 나는 이 문제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던 차에 기업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캠페인화하고 이렇게 크게 진행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마음 한편에서 큰 감동이 일었다. 환경 문제를 한시적인 마케팅적 요소로 보는 게 아니라 큰 기업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보로 꾸준히 이어 가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첫 미팅을 거치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전시 일정이 다가왔다.(웃음) 디자이너로서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와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해 들려달라.

내게 주어진 조건은 이거였다. WWF에서 기보유한 폐플라스틱을 주면 그걸로 창의적인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너무 광범위한 의미였다.(웃음) ‘과연 이걸로 내가 뭘 해야 좋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그렇다고 또 버려진 페트병 같은 걸로 뭘 제조하는 그런 1차원적인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답을 찾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될 것 같아서 일단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해양 쓰레기는 왜 버려지고, 어떻게 수거되고 재활용되는지에 대해. 디자인을 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플라스틱 산업은 가장 어려운 부분에 속한다. 예를 들면 가구나 공예에 관련된 작업들은 내 손과 내 주변 환경을 활용해 얼마든지 작업을 진행할 수 있고 그 폭도 넓은데, 플라스틱에 제품을 녹여내는 작업은 거대한 산업 설비가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금형 하나를 파는 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들고, 그 금형에 열을 주고 플라스틱을 녹이는 기계도 갖춰야 한다. 아직은 디자이너인 내가 한 개인으로서 플라스틱 제조 공정 자체에 관여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좁혀졌다. 플라스틱의 장점은 나무나 철보다 양산 속도가 빠르고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니, 그런 스토리들과 함께 해양 쓰레기에 대한 스토리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위해 리서치를 하면서 해양 쓰레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조사하다 보니 결국엔 우리가 바다에 버린 쓰레기들이 해양 생물들의 몸속에 들어가고, 그 해양 생물들이 우리 식탁에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식탁 위에 있던 플라스틱이 또다시 버려져 해양 쓰레기가 되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절대 끊기지 않는 현실이 상상이 되더라.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에서 결국 전시의 주제가 도출되었다. ‘플라스틱 디너’. ‘디너’라는 키워드가 나왔으니 그 광범위했던 주제가 조금은 좁혀진 것이다. 그럼 그 주제 안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음식 만드는 방법을 가지고 뭘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고,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음식을 만드는 공정이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게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베이킹하는 것처럼 틀에 가루를 넣고 빵가루 대신 플라스틱 가루를 넣어 오븐에 구웠다 빼봤더니 정말로 녹아서 쿠키처럼 딱딱해졌다. 그런데 그냥 녹이기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플라스틱 디너에 나만의 메뉴를 넣어보려고 음식에 대한 것들을 마구 찾아봤다. 근데 진짜 어이없게도 무심코 밥을 푸고 나서 거기 눌러붙은 누룽지를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웃음)


누룽지라니?(웃음) 누룽지라는 메뉴가 이 전시와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 설명해달라.

누룽지에 대해 알아봤더니 의외로 이 메뉴가 선조들의 절약 정신의 결과물이기도 하더라. 옛날에 선조들은 가마솥에 밥을 지어 다 먹고 나면 눌어붙은 누룽지를 잘 보관했다가 간식이나 식사 대용, 또는 전투 식량으로 먹었다. 버리는 것 하나 없이 모두 알뜰하게 소비하는 것, 어쩌면 이것도 환경적인 취지와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스틱은 버려지고 다시 새 플라스틱이 되기 위해 쌀가루처럼 플레이크 형태로 포대에 담겨 산업자재로 팔리는데, 우리가 WWF에서 받은 해양 쓰레기 플라스틱도 그런 가루 형태였다. 그 가루를 밥통에 넣고 온도를 잘 맞춰 구우면 의자가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결과물이 이번 전시에 설치될 누룽지 컬렉션이다. 전시는 이 메뉴뿐 아니라 또 다른 메뉴들로 꽉 차게 될 거고, 이런 전시를 보며 저녁 식사 시간의 대화에서조차 우리가 흔히 놓치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한 얘기들이 오가면 좋겠다는 취지다.


기존에도 이런 해양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고향이 제주도 한림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동네에는 에메랄드 빛 바다인 협재 해수욕장이 있다. 어릴 때는 항상 깨끗한 곳이었는데, 작년에 유럽에 있다가 오랜만에 제주도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바위마다 다 껴 있고...(한숨) 그렇다고 그 일로 ‘환경운동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화가 났다. 그렇지만 뒤돌아보니 나도 무의식중에 아무 데나 쓰레기를 놓고 오기도 했더라. 그래서 이런 작은 것부터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디자이너로서 나는 뭘 할 수 있는지 찾아보며 환경에 대한 생각이 점차 쌓이기 시작했다.


합판 한 장을 가공하면서 남는 조각 없이 의자 4개를 만드는 작업 등 환경에 대한 생각을 디자인에 녹여내는 작업은 그전부터 꾸준히 해왔다.

그게 벌써 10년 전인데,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엔 스스로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걸 깨달은 시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도 모르게 사명감이 생기는 기분이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 전체를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주변을 바꿀 순 있다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나부터 실천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걸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방법들, 즉 디자이너라는 직업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산업공정을 꼬집는 것, 생겨날 뻔했던 쓰레기들을 애초에 차단하는 것, 그것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게 내 일이다. 예를 들면 어떤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할 수 있게 내가 도면을 그린다 하면, 거기 들어간 선 하나가 환경오염을 시키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 하나를 그릴 때도 신중해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작업이 더 수월해지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동그라미를 만든다면 한 장당 동그라미 하나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동그라미를 만들고 남은 부분이 아까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또 다른 디자인이 나오기도 하더라.


환경을 생각한 디자인을 고심하다 보면 생각대로 되는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케이스들이 아주 많다. 나도 그런 부분들을 고민하다 보니 ‘그래서 나는 환경운동가야?’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한다. 아까도 말했듯 그건 아니다. 그저 디자이너라는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콘셉트 디자인에서 양산까지 연결되는 과정에는 애초에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 정말 많고, 실제로 대량생산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는 또 다른 방법들을 찾게 된다. 예를 들어 쓰레기가 나올 수 있는 소재를 원천 차단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자연분해되는 소재를 제안해야 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나는 환경운동가인가?’에 대한 대답을 꼭 해야 한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디자이너는 환경운동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일반인도 얼마든지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이 행보가 누군가에겐 영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였을 때 하나의 사회적 운동이 될 것이다.


‘라잇!오션’ 프로젝트를 컬래버레이션한 디자이너로서, 또는 한 개인으로서 이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

심해에서 발견한 갑각류의 세포에서 플라스틱 성분이 검출됐고, 그 생물의 학명을 ‘에우리테네스 플라스티쿠스Eurythenes Plasticus’라고 붙였다는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만약 ‘라잇!오션’ 프로젝트에 컬래버레이션하는 기회가 없었다면 나도 아마 그 기사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지 모른다. 아까부터 나는 환경운동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환경에 관심을 가지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관심이 이제 우리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티쿠스’라는 종이 발견된 현시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한번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이고, ‘플라스틱 디너’는 그런 취지에서 만든 전시다. “오늘 뉴스에서 ‘플라스티쿠스’라는 새로운 종을 발견했대” 이런 대화를 하는 저녁 식사. 적어도 내가 만든 가구에 앉아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실 때, 또는 저녁 식사를 할 때 “이 의자가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만든 거 알아?” 이런 대화를 할 수 있길 바란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임한수


Posted by 갤러리아 G - 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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