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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첩에서 꺼내온 추억의 여행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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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TRAVEL


어떤 곳으로도 이동할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린 우리의 선택은 바로 시간 여행.


이진수 에디터 조금 더 스스로와 친해지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런던 라이선스 매거진 <타임아웃 서울>에서 에디터로, 딩고 뮤직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근무했다. 뮤직 크리에이티브 그룹 스페이스오디티를 거쳐 지금은 <지큐 코리아> 디지털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back in time for BERLIN

베를린이 매력적인 도시라는 사실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직접 여행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 나를 베를린으로 이끈 건 우연히 구글링으로 보게 된 사진 한 장이다.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베를린이라고 믿기 힘든 풍경. 바다처럼 넓은 반제 호수의 사진이었다. 모니터 너머의 아늑한 파란 빛깔을 만나겠다는 다짐 하나로 비행기를 탔다. 바다 같은 그 넓고도 아늑한 호수를 바라보며 먹은 콥 샐러드의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모든 게 새로웠지만 동시에 하염없이 편안하고 따뜻했던 기억. 여행 이후로 ‘베를린’ 하면 가장 먼저 그 호수가 떠오른다. 힙한 클럽이나 카페 대신. 집구석에 말린 시래기처럼 누워 있다가도 당시 사진들을 보면 그때의 공기, 사람, 풍경이 한데 뒤섞여 한 뭉텅이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경험은 생경하고 아름답다. ‘언젠가’ ‘어디론가’ 떠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베를린, 정확히 말하면 넓고 빛나는 그 호수를.



1.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공원. 리얼 베를리너들의 여유가 부러워 뒤통수를 배경 삼아 한참을 머물렀었다. 2. 바다가 없는 대신 베를린 사람들은 큰 호수와 강으로 휴양을 떠난다고 한다. 베를린 외곽의 반제. 3. 사진 서적과 전시를 주로 하는 ClO 베를린을 구경한 뒤 다리가 아파 강변에 앉아 있다가 찍은 사진. 4.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에서 제스퍼 모리슨 전시를 보고 들른 뮤지엄 카페. 맘에 드는 포스터와 빗자루를 사고 차양 밑에 앉아 멍때렸던 기억이다. 5. 사장님 마음대로 오픈 시간이 바뀌는 레코드 숍 ‘멜팅 포인트’가 문 열기를 기다리며 들렀던 이름 모를 카페.


서재우 에디터 사물과 풍경에 관심이 많고, 세련된 것에 얽매이는 사람이기보다 자연스러움을 담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희망한다. 낯선 도시로 여행하는 걸 즐기는데, 다른 세상을 통해 나 자신의 가능성을 찾기 위함이다. 그런 마음으로 피처 에디터가 됐고, 현재는 <매거진 B> 에디터로 활동하며, <TRASH>라는 이미지 북을 펴냈다.


back in time for TEL AVIV

텔아비브에 다녀왔다. 종교적인 이유도, 오래된 터전이 보고 싶은 까닭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단서,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지은 건물’에 꽂혀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도시는 내가 생각한 모범적인 도시 계획의 완성형에 가까웠다. 물론 여전히 낙후된 지역이 있었지만 이들이 철저하게 계획한 도시는 자연과 건물, 사람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모든 건물은 화합과 공존이라는 전제 아래 세워졌으며, 곡선과 직선, 새로움과 오래됨, 콘크리트와 식물, 기능과 아름다움이 하나가 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곳은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바우하우스와 르 코르뷔지에, 에리히 멘델존, 그리고 벨기에 건축가들의 장점을 끌어들인 건물이 갖는 절제와 우아함 앞에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망설이기도 했다. ‘어번 파라다이스’로 소개할 도시 하나를 정한다면, 그건 바로 텔아비브일 터.



1. 밤엔 석양을 바라보며 지중해의 파도를 감상했다. 2. 길고 좁은 발코니는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을 적절하게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3. ‘화이트 시티’답게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룬 하얀색 건물이 많다. 4. 텔아비브의 또 다른 묘미는 도심에 펼쳐진 시퍼런 지중해다. 5. 텔아비브 건축 양식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다. 건물 어디에서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 있다. 6. 텔아비브의 구도심인 자파의 거리는 더 어둡고, 더 이질적이다.


조진혁 에디터 일하는 것보다 노는 걸 좋아하고, 노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애정한다. 좋아하는 건 번번이 실패하기 마련이라 일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 도시보다는 자연을 좋아해 산과 바다, 사막으로 떠나곤 한다. 직업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에디터이며, 40대를 목전에 두고 이룬 게 없어 마음이 심란하다.


back in time for AFRICA

이제는 뭘 좀 아는 나이가 됐다고 자만하게 될 때가 있다. 세상의 이치를 아는 척하고, 그래서 우리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어쩌고저쩌고, 평등한 동시에 공평해야 하고, 과거의 유물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보면 결론은 아무것도 없다. 고독이 턱끝까지 차올라 더는 말을 잇지 못한다. 30대의 세상 총평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동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도 부조리를 겪어 봤을까? 서러움은? 몇 해 전 신혼여행으로 세렝게티국립공원에 다녀왔다. 아내와 나는 여느 도시의 관광객들처럼 차 안에서만 풍경을 바라봤다. 동물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이었다. 혼자 있는 얼룩말은 먹이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1만 마리의 초식동물과 함께 있으면 그 가능성이 1만분의 1로 줄어든다. 동물들은 피가 달라도, 종이나 생김새가 달라도 살아남기 위해 함께 가족을 이룬다. 새끼를 키우는 즐거움, 배부른 양식과 평화를 누리는 것도 살아 있을 때나 가능한 법. 그들은 오늘만 사는 듯 보이지만, 미래를 위해 멈추지 않고 걷는다. 신선한 풀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일렬로 걷는다. 어딘지도,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미래란 그런 것 아니겠나. 야생에서는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 생명의 순환이라고도 한다. 누군가를 죽여야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하지만 사자의 사냥 성공률은 40%도 안 된다. 허기는 맹수의 숙명. 초원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그래도 삶은 이어지고, 새끼를 낳고, 가족을 이룬다. 문명의 삶이라 해서 다르겠는가? 역병으로 세계가 시끄러워도 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얼룩말과 내 처지가 다르지 않다.



1. 세렝게티의 아침. 얼룩말들의 평화로운 조식 풍경. 2. 자동차와 카메라에는 이미 호기심을 잃은 어린 수사자. 3. 코끼리 무리는 가장 연장자가 앞서고, 가장 강한 수컷이 뒤에서 개체가 낙오되는 일을 방지한다. 4. 보고 싶은 동물을 말하면 기필코 찾아내는 레인저. 5. 기린은 마음만 맞으면 무늬에 상관없이 가족으로 삼는다. 의리파. 6. 세렝게티국립공원의 교통수단인 경비행기. 7. 물 마시다 황천길 가는 건 한순간.


editor 천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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