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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지친 일상에 식물을 처방해주는 '슬로우파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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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PHARMACY

가장 연약해 보이지만 가장 위대한 힘을 품은, ‘자연’이라는 가족.



인류에게 ‘조경’이나 ‘원예’의 개념은 늘 있어 왔지만, 내 한 몸 누일 자리도 부족한 현대인에게 식물을 가꾸는 삶이란 늘 요원해 보이기 마련이죠. 몇 해 전 슬로우파마씨SLOWPHARMACY가 처음 생겼을 때 동료 기자가 이들을 대표하는 아이템이 된 테라리움을 지면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비커에 이끼가 들어 있는데, 새끼손가락만한 사람 모양의 피겨가 정글 숲을 헤쳐나가듯 그 이끼 위를 걷고 있었지요. ‘웬만해선 이끼를 죽이기도 쉽지 않겠다. 이거라면 나도 잘 키울 수 있겠어.’ 다행히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테라리움은 빠른 속도로 유명해졌고, 이끼 외에도 슬로우파마씨가 적재적소에 처방해준 식물들은 많은 사람들의 가족이 되어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습니다.


슬로우파마씨 덕분에 몇 해 전보다 ‘플랜트 스튜디오’라는 개념에 대해 소개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이구름, 정우성 커플이 이끄는 슬로우파마씨는 식물로 아트워크를 만들어 전시하고, 제품도 만들어 판매하며 자연과 사람의 소통을 돕는 ‘플랜트 스튜디오’입니다. 산림청, 이니스프리, 스텔라아 르뚜아, 나이키, 코오롱 등 국내외 굵직굵직한 브랜드들과의 컬래버레이션, 자이언티나 지드래곤 같은 셀러브리티들의 프로젝트에 식물을 소재로 공간을 연출하기도 했죠.


본질적으로 이들이 하는 일은 식물이 건네는 위로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허전한 삶의 한구석, 물리적인 것들로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말 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말 없이 사랑을 되돌려주는 식물은 이미 지친 현대인들의 ‘반려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식물이 우리 삶을 채워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슬로우파마씨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인간의 오만함을 품어주는 가장 강인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연약하다 생각했던 식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월을 맞아 메종 갤러리아 대전에서 전시와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고 있는데, 어떤 콘셉트인지 궁금합니다.

‘나무의 간격’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메종 갤러리아의 공간에 작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로 숲을 만드는 것인데요. 보통 가로수를 심을 땐 일정한 간격으로 심는데, 서로 가까이 심어도 되는 나무,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심어야 하는 나무 등 ‘나무의간격’ 또한 제각각이죠. 나무가 잘 살려면 그들에게도 거리가 필요한 것처럼, 사람 간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고, 그 적당한 간격을 존중할 때 관계가 더 건강해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메종 갤러리아 대전에서의 팝업 외에도 봄을 맞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죠. 요즘 슬로우파마씨가 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요?

사운즈 한남의 독립 서점인 스틸북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산림청과의 컬래버레이션 등이 최근에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스틸북스에선 우리 같은 식물 스튜디오 세 곳을 선정해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색깔을 가진 전시 겸 팝업을 열고 있는데, 슬로우파마씨는 ‘사무실에 출근한 식물들’이라는 주제로 사무실에서도 튼튼하게 살아남는 식물들을 위주로 설치 작업을 했습니다. 스틸북스 쇼윈도에 컴퓨터, 책상과 의자 사이로 초록빛의 사무실 정원을 만든 것이죠. 식물이 주는 위로를 사무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게 실내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비교적 관리가 쉬운 식물들을 선보였습니다. 식목일을 맞아 산림청에서 의뢰받아 제작한 ‘내 나무 키트’ 역시 사람들이 식물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소나무 씨앗, 화분, 모종삽과 물뿌리개, 배양토를 그린 박스 속에 넣어 집에서 키울 수 있는 키트로 만들어 산림청 SNS 이벤트에 참여한 분들께 나눠 드렸습니다. 이 키트로 일종의 소나무 모종을 만드는 셈인데, 후에 땅에 옮겨 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정말 큰 소나무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웃음) 소나무 씨앗은 일반인들이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데, ‘내 나무 키트’에 포함된 것은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에서 제공해주신 거라 더욱 특별하답니다.


한 해 동안 작업하는 프로젝트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던 나이키×지드래곤 컬래버레이션 출시 행사. 그 간 했던 작업 중 가장 규모가 크기도 했고, 아티스트인 지드래곤이 직접 참여한 행사라 기억에 남습니다. 슬로우파마씨는 전체적인 조경을 담당했는데, 행사 2주전에 의뢰가 들어와 밤새 고민하고, 행사 당일까지 눈코 뜰새 없이 바빴었죠. 또 자이언티와 코오롱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로, 멸종 위기 야생 생물들을 지키는 환경 캠페인인 ‘노아 프로젝트’의 뮤직비디오 촬영 공간을 꾸몄던 작업도 인상적 이었습니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빈 수영장을 식물들로 채워 변신시켰는데,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을 꾸미는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어 더욱 열심히 일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없나요? 행사에 선보이는 공간을 위해 몇 날 며칠을 작업하지만, 그날이 지나면 사라지니 허탈 할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점이 오히려 재미있고 좋아요. 비현실적이니까.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식물들이 꾸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들다 보니 전시가 끝나고 그 식물들이 어디로 가는지 굉장히 신경 쓰는 편입니다. 행사 후에 식물들이 절대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 후까지 생각합니다. 노아 프로젝트 때도 촬영이 끝나고 현장에 있었던 스태프들이 화분을 다 가져갈 수 있게 어레인지했고, 나이키 행사에 쓰였던 나무 역시 행사 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그 점은 꼭 신경써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작업들을 해오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나이키 행사를 위해 갑자기 큰 나무를 구해와야 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급하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지나가시던 어떤 할아버지가 충북 괴산에 그런 큰 나무가 있다고 제보해주시고, 심지어 그곳에 같이 가주시기까지 했습니다. 나무를 소유하고 계신 어르신을 설득하고, 그 나무를 서울까지 공수해 행사장을 멋지게 꾸몄으며, 행사가 끝난 후엔 어르신께 전화를 드려 나무를 다시 받아주실 수 있나 여쭤본 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았죠. 이렇게 하면 배송비가 비싸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엔 플랜트 스튜디오가 많아지긴 했지만, 비커에 이끼와 오브제들을 넣어 만든 테라리움 제품들로 알려진 슬로우파마씨야말로 그 시초라 할 수 있어요. ‘슬로우파 마씨’라는 이름처럼 식물로 아픈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철학, 비커나 약사 가운 같은 모티브들이 특히 잘 어울리는데,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가 있을까요?

조경 일을 하기 전부터 비커, 현미경 같은 과학용품을 좋아했습니다. 돈이 생기면 을지로에 가서 삼각플라스크도 사고, 샬레도 사 모으곤 했으니까. 사람들이 자꾸 식물을 죽인다는 말을 하니까 이끼를 넣었고, 일반 화분에 심기 싫어서 비커에 넣고 그걸 조합해 키트로 만들었습니다. 또 주사기나 의사 가운 같은 오브제들도 좋아하는데, 이런 것들도 슬로우파마씨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죠. 좋아하는 걸 다 할 수 있게 맞추고, 내 주변에 원래부터 있던 것을 조합하니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식물을 보기 위해 여행도 많이 다니나요?

모든게 우리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니려고 하는데,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외국에 가도 현지의 가든 숍이라든지 꽃 집, 식물로 꾸며진 곳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갔던 곳 중 인상 깊었던 건 빅토리아 시대부터 수집해온 식물들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영국의 큐가든Kew Gardens. 일단 그 엄청난 규모에 놀랐고, 그로 하여금 대영제국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침 5월이 가정의 달인데요. ‘반려 식물’이라는 개념 을 정착시키는 데 슬로우파마씨가 일조한 바가 크고, 초창기보다 반려 식물을 들이는 사람들도 더욱 많아 졌어요. 처음 집안에 식물을 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정우성 너무 많은 사랑을 주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 말은 무심하게 내버려둬도 좋다는 뜻이에요. 너무 정성을 쏟다가 오히려 식물의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을 너무 자주 주면 과습이 된다거나 뿌리가 썩어버리기도 해요. 있는 듯 없는 듯, 슥 지나가다 한 번 물 주고 이래야 식물들이 알아서 잘 큽니다.

이구름 요즘처럼 봄이 시작되는 시기엔 손님들도 부쩍 많아지고, “이거 주세요, 저 큰 것도 주세요. 행잉 플랜트도 주시고요” 하면서 식물을 왕창 사 가세요.(웃음) 그런데 그게 정말 안 좋아요. 진정한 ‘반려 식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한 아이를 데려가서 정말 소중하게 키워보길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아, 잘 자랐어. 이제 좀 알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 다음에 두 번째 식물을 들이고, 그것도 성공하면 그때부터 정말 식물들을 더 많이 들여도 됩니다. 처음부터 왕창 사 가시는 분들은 정말 왕창 죽여요.(웃음) 그렇게 죽은 식물들을 버릴 땐 마음이 아플텐데, 그건 정말 좋지 않은 사이클입니다.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도 식물처럼 알아서 잘 크게끔 ‘방목형’으로 키우고 있나요?(웃음)

정우성 글쎄, 너무 들여다보고 키우면 오히려 과보호하게 되는 것 같긴 해요.(웃음) 

이구름 사실 워낙 바빠서 신경을 잘 못 써요. 나 역시 바쁜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익숙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 있고, 건강하면 다 되지 않을까요?(웃음)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컴퓨터에 ‘꿈’이라는 폴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안엔 어 떤것들이들어있고,다음에 열 폴더에는 또 어떤 꿈들이 들어 있을까요?

부모님께서 요즘 작은 땅에 정원을 꾸미고 계십니다. 우리도 매주 거기 내려 가는데, 그게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다음 꿈 폴더에는 우리만의 큰 공간에서 식물을 가꾸고, 그 공간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꿈이 들어있습니다. 지금은 상업 공간이나 도시에서 일하지만,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그런 큰 공간을 갖고 싶어요. 아직은 엄청나게 큰 꿈이죠. 지금은 그런 꿈을 이루는 일이 멀게만 느껴지지만,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 그 폴더를 열어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슬로우파마씨 특별전시 '나무의 간격'

메종 갤러리아는 가드닝 테마의 특별전시로 ‘슬로우파마씨’를 선보입니다. 서울 상수동에 위치한 ‘슬로우파마씨’는 바쁘고 지친 현대인의 일상에 식물을 처방해준다는 컨셉으로 식물을 활용한 개성 있는 전시와 브랜드가 전달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어우러지며, 국내외 수많은 식물 애호가로부터 각광받는 브랜드입니다. 청담동 까르띠에, 한남동 블루보틀, 나이키 파라노이즈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한 슬로우파마씨의 첫 번째 대전 전시입니다. 

- 기간 : 4.20 - 5.16

- 장소 : 메종 갤러리아 대전 1층 Exhibition

- 문의 : 메종 갤러리아 대전 1층 Exhibition (042-867-5789)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임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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