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BORDER
디자인 크루 ‘움직임’을 이끄는 양재혁의 이야기.
얼마 전 세계 산업디자인 역사를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 <루나파크전 : 더 디자인 아일랜드>가 DDP에서 열렸습니다. 전시 총괄 디렉터이자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거장, 스테파노 지오반노니Stefano Giovannoni가 국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관심 있는 한국 디자이너’로 디자인 크루 움직임Umzikim의 대표 양재혁을 꼽았죠. 전 세계 인구 절반쯤은 엉덩이에 깔고 앉아봤을 스툴을 만든 거장의 지목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양재혁. 국내 매체의 관심이 새삼스러운 건 사실 양재혁과 움직임은 이미 해외 시장에서 더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양재혁은 ‘서울대 공대 출신 디자이너’로 더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디자인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가 공부한 인간공학과 전혀 동떨어지지 않았기에 같은 생각을 가진 공대 출신 친구들과 디자인 크루 움직임을 만들었습니다. 2013년 밀라노 페어에 참가하며 밀라노 디자인업계의 대모이자 큐레이터인 로사나 올란디Rossana Orlandi, 그리고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스테파노 지오반노니의 눈에 띄어 그들과 교감을 나누며 많은 것을 배워나갔죠. 책이 쓰러지지 않게 비스듬히 디자인한 북스택, 사람 눈을 형상화한 룩앳미Lookatme 컬렉션 같은 실험적인 제품들은 밀라노, 파리, 뉴욕의 리빙 숍과 백화점에 입점되어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최근엔 아트 디렉션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북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인 매거진 <드웰Dwell>이 뽑은 ‘24명의 디자이너’에 선정되는 큰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양재혁을 ‘디자이너’ ‘엔지니어’ 혹은 ‘작가’, 그 어딘가에 분류해 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모교에서 디자인과 경영, 공학을 함께 공부하는 융합 과정에서 같이 디자인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조차 가끔 물어봅니다. “너네 회사 디자인 누가 해?”라고. 요즘엔 나 스스로를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팅과 무역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움직임이라는 ‘디자인 크루’로서 어떤 경계에도 스스럼 없는 그런 업을 만들어가는 그 자체가 바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쓰러지지 않게 비스듬히 디자인한 북스택, 물잔이 넘어지지 않는 각도로 기울여 만든 책상 등 ‘각도’와 ‘구조’를 강조한 제품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전엔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개성을 그런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마케팅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도’와 ‘중력’이란 단어를 썼었죠. 요즘엔 후배 디자이너들과 협업하고, 유럽 시장에 맞춘 디자인을 배워가는 중이라 조금 다른 스타일의 디자인을 내놓고 있는데, 여전히 내 손에서 탄생하는 디자인들은 그런 식입니다. 디자인도 하나의 언어라고 한다면, 나라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로사나 올란디는 ‘밀라노 디자인계의 대모’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첫 만남은 어땠나요?
우리의 북스택 제품을 보자마자 아무 말 없이 그저 “30cm로 만들라”고만 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칼같이 확신하지?’ 하며 반신반의했지만 일단 군말 없이 그렇게 만들어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그것만 팔리더라고요.(웃음)
파리의 르 봉마셰Le Bon Marché 같은 백화점에 입점시킨 룩앳미 컬렉션 제품들은 로사나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제품인데,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로사나는 사람을 굉장히 하드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입니다. 공간에 자리한 수많은 제품들 중 눈에 띄어야 하니 움직임만이 할 수 있는 걸 잘 찾아보라고 거듭 강조했죠. 실제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괴물 같은 디자인 제품들이 즐비한 로사나의 갤러리엔 어떤 물건을 가져다 놔도 그 개성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품에 눈을 박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공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건데,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사람의 눈 모양처럼 만든 건 그게 얼굴처럼 생겨서 사람들이 빠르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들면 일단 사람들이 내 물건에 눈길이 갈 거라는 생각에서 디자인한 제품이 바로 룩앳미 거울과 트레이입니다.
‘THIS ISNT’ 프로젝트는 어떻게 전개할 생각인가요?
이 프로젝트는 현재 오프화이트Off-white를 이끌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오프화이트 이전에 선보였던 파이렉스Pyrex라는 브랜드의 전개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챔피언Champion이라는 브랜드의 옷을 사다 파이렉스 로고만 붙여서 판 충격적인 방식이었는데, 우리도 빈티지 임스 체어나 임스 체어 카피 제품에 ‘THIS ISNT’ 로고를 붙여서 판매할 겁니다. ‘이것은 임스 체어가 아니다’라고 써 있지만 결국 임스 체어로 검색될 거죠.
새롭지만 과격합니다. 큰 이슈가 될 것 같아 기대되는 한편 걱정이 앞서는데, 움직임이 이런 시도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영국의 디자인 저작권 이슈 같은 경우 반대하는 입장이 더 많습니다. 유통사가 저작권을 오랫동안 갖고 있을수록 젊은 디자이너들이 빛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죠. 왜 아직도 임스 체어나 디터 람스만 주목받는가? 물건은 나이 들어가고 있는데 왜 아직도 그 가격에 임스 체어를 사야 하나? 이렇게 되면 결국 젊은 디자이너들이 설 땅이 없습니다. 그래서 움직임은 ‘THIS ISNT’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런 작업들이 외국 혹은 패션 신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는 결국 그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제품들을 보호해주고 싶어서죠. 가장 크리에이티브하고 과격하게 경쟁하며 성장해야 할 신에서 젊은 디자이너들은 경쟁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논의들이 디자인 신을 더 자유롭게 하고 발전시킬 거라 믿고, 나는 이 신이 정말 재미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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