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IST, KIM DASOL
단단한 자아와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내일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지는 청년 김다솔의 우주
피아니스트 김다솔은 2013년 금호아트홀에서 국내 최초로 시도한 ‘상주 음악가’ 제도의 첫 번째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큰 화제가 됐던 인물입니다. 그는 2014년 뉴욕 필하모닉 내한 공연의 협연자로 전 세계 팬들에게 얼굴을 알렸지만, 이미 2008년부터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Tonhalle Orchestra Zurich)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오케스트라 (Konzerthau-sorchester Berlin),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정명훈, 데이비드 진먼David Zinman 같은 거장들과 협연하며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온 준비된 실력가죠. 그는 또한 1898년에 세워진 독일의 클래식 음반사이자 ‘클래식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에서 첫 데뷔 음반을 발매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를 선보이며 국내외 무대에서 꾸준히 주목받는 차세대 피아니스트입니다.
하지만 인간 김다솔은 그런 거창한 타이틀보다 내면에 더 큰 우주를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곧 서른 살 청년이 되는 김다솔이 피아노 앞에서 보낸 기간은 무려 18년. 그는 피아노를 ‘잘하는지’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없지만 그 의문이야말로 오늘도 여전히 피아노 앞에 앉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웃으며 말하고, 그래도 제법 잘 살고 있기에 오늘도 행복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클래식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또래의 연주자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지만, 다른 시작점도, 20대의 거친 풍파도 그 우주를 흔들진 못했죠.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싶은 음악조차 삶을 흔들 순 없다고 생각하는 그의 견고한 자아가 바로 오늘의 김다솔을 수많은 별들 중 가장 빛나 보이게 하는 힘이 아닐까요.
Q 금호아트홀의 첫 상주 음악가이자 매해 정기 공연을 진행하고 있고, 특히 작년부터는 ‘베토벤의 시간’ 시리즈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금호아트홀과 연이 닿아서 연주를 시작한 게 2011년부터니까 인연이 짧진 않습니다. 시간이 쌓이고 연주자인 나도 나이 들어가고 있으니 매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늘 책임감을 갖고 연주하려 합니다. 특히
베토벤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4년간의 대장정을 이어가는 동안 총 일곱
번의 공연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만큼 금호아트홀과 나, 그리고 관객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된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Q 베토벤의 소나타만으로 일곱 번이나 공연하려면 꽤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베토벤은 김다솔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고, 확실한 건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작곡가라는 점입니다.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청력을 잃어가는 중에도 음악과 함께한 그의 열정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되새기며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다시금 ‘음악이 정말 대단한 힘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하죠.
Q 베토벤의 음악은 그의 생애만큼이나 폭풍 같죠. 월광을 들으면 깊은 심연에 빠지는 듯한 느낌인데, 얼마 전 베토벤 시리즈 공연에서 김다솔이 연주한 ‘월광’은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어서 더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월광은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런 작품을 피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 그동안 연주할 기회가 없었어요. 이번 베토벤 시리즈에서 이 곡을 연주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월광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시점에 만든 작품이라 그런지 슬프다기보다는 뭔가를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리서치를 하다 최근 괴테가 베토벤에 대해 쓴 글을 읽었는데요. ‘이렇게 열정적이고, 이렇게 따뜻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괴팍하고 못되고 거만하다고 알려진 베토벤에게 따뜻한 면모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그 글을 읽고 굉장히 놀랐죠. 어제 월광과 함께 연주했던 ‘대소나타’와 ‘고별’도 그렇고, 괴테의 글은 베토벤과 그의 작품을 좀 더 따뜻하게 해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Q 베토벤을 따뜻하게 해석하는 김다솔의 마음이 더 따뜻하게 느껴져요.(웃음) 평소 성격은 어떤가요?
매일매일 약속 잡고 나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예요. 전 확실히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죠. 조금 까다롭기도 하고. 그러나 내 사람들이 날 필요로 하면 언제든 가는 편이에요.
Q 친한 친구들도 모두 음악을 하나요?
그렇진 않아요. 피아노 앞에서 온종일 씨름하다 나가면 그에 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미술하는 친구, 글 쓰는 친구 등 오히려 다른 분야의 친구들이 많아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음악 말고 다른 분야에도 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주제를 놓고 하루 종일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끌리는데, 생각이 다르면 더 좋지 않나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생각이 같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대신 다른 의견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분야의 친구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Q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수많은 공연을 해오며 10대와 20대 시절을 가열차게 보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난 10년간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그때와 비교해 요즘의 ‘청년 김다솔’은 어떻게 변모했나요?
확실한 건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화가 많죠.(웃음) 그런데 예전엔 감정 표출을 숨기지 않았는데 요즘엔 어느 정도 혼자서 삭히는 법을 깨우쳤어요. 그렇지만 음악적으로 깊게 파고드는 건 오히려 더 심해졌죠. 이건 일종의 직업병인 것 같아요. 연습하다 잘 안 될 때 일단 넘어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에 속해요.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땐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다 싶을 만큼 놓지 않곤해요.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해요. 한 3년 정도 그렇게 하니 ‘아, 피아노는 이렇게 치는 거구나’ 하는 감이 왔어요. 이렇게 반쯤 돌 때까지 피아노를 치다 보니 이제야 무대에서 조금 들어줄 만한 연주가 나오더라구요. 그 맛을 알게 되니 더더욱 집요하게 파고들게 되요. 그런데 일상에서도 계속 그렇게 하니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걸 느껴서 피아노 앞에 있지 않을 때의 인간 김다솔은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추려고 애를 쓰곤하죠. 쉽진 않지만.(웃음)
Q 슬럼프가 올 때도 있나요?
사실 음악적인 슬럼프는 크게 없었어요. 왜냐하면 피아노만큼 소중한 게 바로 나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죠. 내 삶은 피아노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내 삶에 포함되어 있는 친구, 가족, 그리고 쉬는 시간이 피아노보다 더 중요했고, 그러다 보니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늘 있었어요. 그런 삶의 가치를 지켜가다 보니 음악 외에 다양한 분야에 있는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언제나 필요하면 피아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을 만나면 음악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도 대화가 되고, 또 친구들 역시 일 문제로 어지간히 힘들어하는 걸 보면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지’ 싶어 더욱 안심이 되더라구요.(웃음)
Q 또래의 그 누구보다 더 일찍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처음으로 ‘이게 내 업이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나요?
어릴 때 이모가 등록해준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며 곡 몇 가지를 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 좀 더 큰 후엔 국제 콩쿠르 대회에서 덥석 1등해 세계 무대에 나가게 됐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피아니스트가 되어 한동안 ‘이게 내 업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건 ‘나는 평생 피아노를 치고 싶은가?’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인간 김다솔은 그럴 만한 인격체인가?’에 대한 의문이었어요. 그래도 음악이 좋으니 계속해나갔죠.
Q 이제 그 의문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건가요?
아직도 확신은 없어요. 일생 동안 피아노를 치고 싶은 확신은 늘 있었고, 거기에 대해 지치지 않을 자신도 있긴해요. 연습만큼은 일평생 지치지 않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오히려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확신이 없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어차피 완벽한 연주는 하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는 확신은 들긴한데요.(웃음) 결국엔 완벽에 다다르지 못할 걸 알기에 그걸 받아들이며 살고 있어요.
Q 열한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이제 곧 서른이 됩니다. 인생에 음악이 아닌 다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는 없나요?
서른이 될 즈음 그런 시기가 찾아온다는데, 정말 오더라구요.(웃음) 친구들도 그런 경험을 하고 있고, 다들 ‘이거 계속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가지기도 해요. 음악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은 몇 가지 다른 일들이 있긴 해요. 세계를 돌아다니는 직업이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인터뷰를 하고 싶어졌어요. 나 스스로가 연주자이다 보니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이 꽤 많더라구요. 또 굉장히 큰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을 인터뷰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오페라 의상 디자이너, 무대 연출가 같은 분들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데도 주목받지 못하는 게 조금 속상하곤하죠. 언젠가는 그분들도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게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Q 30대에 대한 청사진이 있나요? 그때의 김다솔은 어떤 모습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릴 땐 늘 ‘스스로 마음에 차지 않는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히 피아니스트로서는 제법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왔지만 서른 즈음이 되니 어떻게 방향을 잡아가며 연주하면 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은데요. 이렇게 계속 깨우쳐 가며 서른엔 더 연주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사실 사람들이 “정말 드라마틱하다”고 혀를 내두를 만큼 20대 초반에 많은 일들을 겪었는데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삶과 인간관계가 너무 순조로워서 행복하고, 커리어보다 개인적인 삶에 더 기반을 잘 잡아놓은 것 같아 기분이 참 좋기도 해요. 아, 그리고 서른 살 생일을 어떻게 보낼지도 계속 생각 중이랍니다.(웃음)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한 번도 생일을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어요. 이번 생일에도 연주했고. 한번은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더니 생일이 통째로 지나가버린 적도 있죠. 그래서 서른 살 생일만큼은 좀 챙기고 싶어요. 파티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고, 그저 친구들과 조촐하지만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거 하나면 될 거 같네요.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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