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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관찰자, 황두진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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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소설가 김영하와 뇌 과학자 정재승이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통 시장과 청년몰, 다른 용도의 두 공간을 결합해 상권을 활성화시킨 전주 남부시장에 방문했을 때였죠. 2년 전 출간한 동명의 저서로 이미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 무지개떡 건축은 층마다 주거와 사무, 상업적 용도가 복합적으로 구성된 건축을 일컫는 말입니다. 무지개떡 건축은 이미 존재하는 ‘상가 주택’과는 또 다른 의미로, 도시의 밀도와 복합이 지난날과는 사뭇 달라진 오늘날의 사회 현상에 맞춰 진화한 ‘버전 2.0’ 같은 개념으로 다가옵니다.

2년 전 출간한 책이 다시금 화제가 되어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오고, 많은 이들이 새삼 무지개떡 건축을 궁금해하는 요즘, 방송의 여파로 더욱 ‘핫’해진 건축가 황두진을 통의동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그의 사무실과 살림집을 겸한 이곳은 (상업 용도로서의 공간은 없지만) 그가 제안한 무지개떡 건축과 흡사한 형태죠. 상주인구와 유동인구가 건강한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무지개떡 건축에서 직주근접 형태로 생활하고 있는 셈.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그는 새삼 회자되는 게 무색할 만큼 지난 2년간 쉼없이 무지개떡 건축 이야기를 이어왔습니다. 기회가 허락하는 모든 반경에서 무지개떡 건축의 흔적을 찾아 다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글을 썼습니다.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 도시의 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그는 중첩된 시간만큼 쌓인 도시의 사연을 묻고 말을 걸어 숨을 불어넣고있습니다. 건축가 황두진이 공간을 쌓아 올리는 방법은 물성의 것이 아닌 감성의 일이리라. 도시의 관찰자, 황두진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얼마 전 방송을 통해 전주 남부시장을 방문한 김영하 작가가 무지개떡 건축을 언급해 다시금 화제가 됐습니다.

방송은 나중에 봤습니다. 당시 지인이 전화를 걸어 지금 TV에서 ‘무지개떡 건축’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하더라. 그 책이 출간된 지 거의 2년이 다 돼가는데 얼마 전에는 갑자기 출판사 사장님이 점심 같이 먹자고 연락하기도 했죠.(웃음)

Q 단일 용도의 층으로 이루어진 ‘시루떡’ 같은 건축이 아닌, 주거와 다른 여러 용도의 공간이 복합적으로 채워진 ‘무지개떡’ 건축은 건축물을 좀 더 사회적인 개념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무지개떡 건축은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동시에 늘리는 건축. 대부분의 건물은 상주인구만 늘리거나 유동인구만 늘리고 있죠. 이건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이게 어떨 때 문제가 되느냐, 바로 유동인구는 늘어나는데 상주인구가 떨어질 때죠. 그러면 선거 득표가 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서 그 지역에 어떤 일이 벌어지면 사업은 물론 회사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거는 다른 지역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사업을 하는 동네에서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가 없고,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는데요. 상주인구와 유동인구가 건강한 밸런스를 유지할 때 건강한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죠. 건축가로서 나는 무지개떡 건축을 통해 이 문제를 수직으로 나눠버리는 게 나름대로의 해법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도 문제점이 없을 수는 없지만, 전 세계 다른 도시들을 봐도 이러한 개념이 보편적인 솔루션입니다.

Q ‘상가 아파트’라는 말 대신 ‘무지개떡 건축’이란 표현을 쓴 이유가 있습니까?

‘상가 주택’ ‘상가 아파트’ ‘주상복합’ 등 기존 단어에 대한 사회 인식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무지개떡 건축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게다가 주상복합 같은 경우 ‘주’와 ‘상’이 절반씩은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많은 주상복합 건축물은 상가는 1, 2층 정도이고 90% 넘게 주거 공간인 경우가 많아 주상복합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이상적인 경우는 저층에 상가가 있고 중간 층 정도에 오피스가 있으며 그 위에 호텔이 있고 더 위에 아파트가 있는 그런 형태다.

Q 무지개떡 건축 이야기를 지속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문에 연재하는 글들도 그 일환인 것 같은데.

<무지개떡 건축>에서 딱 한 챕터, 세 페이지로 다룬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 도시에서 발견된 무지개떡 건축의 계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이 지어졌으나 몇 년 후 단지형 아파트가 대세를 이루며 싹 사라진 ‘상가 아파트’에 관한 얘기죠. 작년 하반기부터 <서울신문>에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라는 타이틀로 그 계보를 살피는 작업을 해 일주일에 한 번씩 기고했습니다. 작년 하반기엔 그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주로 서울의 무지개떡 건축물을 찾아 다녔지만 지방이나 외국에 있는 건물들도 보러 다니고, 사진도 거의 다 직접 찍었습니다.

Q 현재 존립하고 있는 상가 아파트들을 찾아 다니는 작업은 어땠나요?

연재된 글에도 많이 언급했지만, 무지개떡 건축이나 상가 아파트에 대한 개념이 사람들에게 잘 안 받아들여진다는 걸 느낍니다. 우리나라에 상가 아파트가 처음 등장한 1950~60년대에는 도시와 주거에 관한 학문적 성찰이 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당시 견문이 있는 고위 공직자들이 외국의 상가 아파트 형태의 주거를 보고 와서 정부 주도하에 그대로 짓기 시작했던 거죠. 문제는 당시 우리나라 도시는 전혀 복합적이지 않고, 밀도도 높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상가 아파트의 디테일에 대한 이해 없이 아래엔 상가, 위에는 집만 넣어 건축하다 보니 문제가 많이 생겼죠. 그리고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사농공상의 개념이 있기 때문에 가게 위에 주거하는 것에 대해 터부시하는데요. 그래서 무지개떡 건축이나 상가 아파트에 대한 글은 내 또래 세대나 더 윗세대는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기도 하죠. 우리 사회는 점점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도시에서 살다가 도시에서 죽는 ‘도시민’들의 사회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몸도 도시에 있고, 마음도 도시에 있어서 전원에 대한 환상이 없는 진짜 도시민들. 이런 도시민들인 젊은 세대는 아무래도 가게 위에 사는 ‘상가 아파트’를 잘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황두진의 이름에 따라붙는 또 다른 수식은 ‘한옥 건축가’일 겁니다. 북촌의 한옥 5재, 삼청동의 가회헌 등 서울에서 손꼽는 한옥을 설계해 국내 대표적 한옥 건축가로 불리고 있는데요. 작년에는 국내 최초 6성급 호텔로 화제가 된 시마크호텔 내부에 한옥 별채 스위트룸인 ‘호안재’를 설계하셨죠?

전통 한옥의 기본적인 골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로 설계했지만 안채와 별채, 사랑채에 각기 다른 장인들의 손맛을 반영하면 어떨까 해서 일부러 다 다른 대목장에게 작업을 의뢰했습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현대식 건축물인 본관과 어떤 연결 고리를 찾을 것인가에 대한 작업이었는데요. 호텔 앞뒤로 동해 바다와 경포 호수를 끼고 있어 호안재 안채의 누마루에서 경포대를 마주 볼 수 있게 합니다. 옛 누각인 경포대와 새로 지은 건물의 누각이 서로 마주하게 한 것이죠. 그런 공간적인 스토리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무지개떡 건축과 한옥의 개념 사이에도 연관성이 있습니까?

무지개떡 건축은 기존의 우리 역사와 전통 속에선 선례가 없는 건축입니다. 그래서 무지개떡과 한옥은 황두진이라는 한 건축가의 사고 체계 안에서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이죠.
얼마 전 도시형 한옥에 대한 전시에 일부분 참여하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도시형 한옥이라는 용어에 현혹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현대 도시에서 단층의 한옥 건물은 도시형 건물이 될 수 없기 때문. 도시형 한옥이란 소리를 들으려면 적어도 4, 5층 정도는 돼야 하는데, 한옥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있기 때문에 한옥 건축을 20여 채 짓는 동안
나 스스로도 무지개떡 한옥을 지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문화적으로 보수적이기 때문인지 아직 사회가 내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유감힙니다. 꼭 한 번은 한옥 무지개떡 건축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미 머릿속에 대충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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