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방 인테리어, 코끼리 의자 어때요?

 코끼리를 모티프로 만든 코끼리 의자, 들어보셨나요? 코끼리 모양이라 해서 단순한 장난감 의자라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20세기 혁신적 디자인을 탄생시킨 건축 설계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임스 부부의 대표작 중 하나니까요. 아이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과 시대를 초월한 실용성, 세련된 디자인이 고스란히 담긴 코끼리 의자를 만든 임스 부부, 그들의 디자인 세계로 함께 들어가보실까요? :) 

1945년에 제작한 오리지널 코끼리 의자 / 2007년에 한정 수량으로 발매한 코끼리 의자

 지난 2007년은 미국 모던 디자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중 하나인 찰스 임스Charles Eames가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기념해 스위스 가구 회사 비트라Vitra는 찰스와 그의 아내 레이 임스Ray Eames가 디자인한 ‘코끼리 의자’ 2천 개를 한정 판매했죠. 이 의자의 오리지널 버전은 1945년에 발표되었지만 합판을 소재로 한 이 의자는 제작 과정이 매우 까다로워 대량생산을 하지 못한 채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거의 6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온 이 제품은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어 순식간에 완판됐습니다. 현재 비트라는 이 사랑스러운 의자의 플라스틱 버전을 발매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버전은 어린이 가구답게 빨강, 핑크, 연두, 흰색 등 다채로운 컬러를 적용했고, 가격도 훨씬 합리적이죠. 

비트라에서 판매하고 있는 플라스틱 버전 컬러풀 코끼리 의자

 1945년에 첫선을 보인 코끼리 의자는 미국의 모던 디자인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 같은 존재입니다. 사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디자인 분야에선 후진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더니즘의 주요한 진보는 모두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는 동안 미국은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또 F.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 속 속물적인 인물들을 통해 통속적인 졸부의 미학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찰스와 그의 아내 레이 임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1938년, 크랜브룩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찰스는 이 학교의 초청으로 연구원 겸 강사로 일했고, 레이 카이저는 학생이었습니다. 1941년에 부부가 된 이들은 같은 해 미 해군으로부터 부상병들을 위한 부목을 디자인해달라는 역사적인 의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에 많은 부목을 만들고자 이들은 성형 합판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플라이폼드 우드Plyformed Wood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부목 5천 개를 생산한 이들은 전쟁 기간에 쌓은 성형 합판 기술을 바탕으로 의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레이 임스와 찰스 임스

 합판을 이용해 가구를 만드는 기술은 1930년대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가 개척했습니다. 합판은 쉽게 구부릴 수 있어 나무를 깎아 프레임을 만드는 것보다 형태를 훨씬 용이하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볍고 견고하다는 장점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바 알토의 합판 기술은 2차원적인 성형에 그쳤습니다. 임스 부부가 개발한 부상병을 위한 부목을 보면 합판 하나를 매우 복잡한 형태로 성형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는 3차원 성형 합판 기술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1945년에 발표한 임스 부부의 대표작인 LCW(Lounge Chair Wood)를 살펴보면, 이 의자의 좌석과 등받이는 인체에 맞게 미묘하게 파이기도 하고 꺾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알바 알토의 2차원 성형 합판 기술로는 불가능한 것이죠. 더구나 원목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3차원 성형 합판 기술의 완성은 디자인계에 두 가지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는 좀 더 자유롭게 의자 형태를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인데요. 이는 194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유기적인 조각의 흐름을 의자 같은 가구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첨단 기술로 아방가르드하고 조형적인 형태를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또 하나는 편안하고 안락한 형태를 아주 단순한 스타일로 구현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대부분 편안한 의자라고 하면 쿠션을 넣고 가죽이나 천을 씌워 고가로 만드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구조를 노출시킨 단순한 스타일로도 사람들에게 편안한 인상을 줄 수 있게 되었죠. 마지막으로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고 매끈한 스타일은 전후의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더니즘의 오랜 숙원을 푼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위) 2차 세계대전 때 미 해군의 요청으로 제작한 부목
(아래) 찰스와 레이임스가 1945년에 발표한 합판의자 LCW. 파이미오 의자의 면이 평면인 것과 달리 LCW는 곡면이죠.

 1945년부터 찰스와 레이 임스는 그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가구를 쏟아냈습니다. LCW는 그들의 오랜 실험의 결정판입니다. 성형 합판 좌석과 강철관 다리를 결합한 ‘3개 다리 의자Three Legged Chair’는 좀 더 대중적인 디자인으로 1950년대 미학을 대표하죠. 1946년에 뉴욕 현대미술관은 이 혁신적인 가구를 선보인 찰스 임스를 초청해 ‘찰스 임스의 새로운 가구’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개최했어요. 이 전시회는 3차원 성형 합판 의자가 전 세계로 퍼지는 데 이바지했죠. 이후 덴마크의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독일의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 영국의 어니스트 레이스Ernest Race 등 당대의 최고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1950년대 초반부터 유럽식 성형 합판 의자를 디자인했습니다. 임스 부부의 혁신이 세계 디자인계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죠. 오늘날 플라스틱 의자와 함께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성형 합판 의자입니다.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는 1940년대 중반에 실용적인 성형 합판 의자와 함께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 겸 의자도 계획했습니다. 그들은 곰, 말, 물개, 개구리 등을 포함한 동물 시리즈의 일환으로 1945년에 코끼리 의자를 디자인했습니다. 이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스툴 형식이며, 장난감이기도 합니다. 성형 합판으로 제작했지만 이것은 의자보다 더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어 생산비를 낮추기 힘들었죠. 이에 따라 1946년 현대미술관 전시에는 출품되었지만 판매되지는 못했어요. 임스 부부의 가구는 처음에는 미국의 가구 회사인 허먼 밀러Herman Miller사에서 생산했습니다. 1934년에 설립된 스위스의 가구 회사 비트라는 별 볼일 없는 회사였어요. 이곳의 설립자인 빌리 펠바움Wili Fehlbaum은 임스 부부의 가구를 보고 단숨에 매료되었고, 가구의 유럽 판권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에 따라 임스 부부가 비트라에 찾아가 생산 기술의 노하우를 알려주었죠. 그 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구 회사가 된 비트라는 2007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던 코끼리 의자를 재발매해 임스 부부의 뛰어난 예술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코끼리 의자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조형성은 레이 임스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녀는 결혼 전 한스 호프만Hans Hofmann으로부터 추상 표현주의 회화를 배웠어요. 유기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임스 부부의 의자들은 레이의 이런 경험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반면 건축가로 출발한 찰스 임스는 의자의 공학적인 부분을 책임졌습니다. 두 사람은 20세기 디자인 역사에서 가장 환상적이고 완벽한 협력의 사례입니다. 코끼리 의자는 바로 그 협력의 결과물이죠. 

 (위) 가볍고 견고한 DKR-2 임스 와이어 체어 / (아래) '문재인 의자'로 유명세를 탄 라운지 체어

코끼리 의자 외에도 임스 부부가 남긴 걸작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들은 비단 가구뿐 아니라 건축, 광고, 영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족적을 남긴 인상적인 예술가 부부죠. 5월 가정의 달은 다 끝나가지만, 가족을 위해 오래 오래 남을 특별한 인테리어 가구를 찾고 계시다면? 임스 부부의 손에서 탄생한 가구들에 눈을 돌려보세요. 

Writer 김신 (<고마워 디자인>의 저자이자 디자인 칼럼니스트) 
Digital 이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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