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AGE
영국 버진 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과 아마존 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이들의 공통점은? 얼마 전 우주에 다녀왔다는 사실이죠(물론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는 아주 잠시였지만). 민간 우주여행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요즘, 패션계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습니다. 공상과학영화나 SF 게임에 등장할 법한 미래주의 패션이 트렌드 최전선에 섰으니 말이죠. 대표적인 예로 나사의 우주비행사 복장을 재현한 발렌시아가와 모델 최소라가 온몸을 실버 컬러로 색칠하고 그 위에 네트 드레스를 입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있습니다. 한 술 더 떠 격납고에서 쇼를 시작해 달을 배경으로 마무리한 발망 컬렉션에도 어김없이 우주비행사 슈트가 등장했습니다.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발망 컬렉션을 선보이기에 앞서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요점은 목적지가 아니라 실제 가는 것, 즉 떠나고도 피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 미래주의 패션은 각박한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이들의 욕망이 반영되어 재미있고 신선한 동시에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SAY MY NAME
티셔츠 한가운데에 떡 하니 로고 프린트를 넣고 대중 친화적인 마케팅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로고 마니아의 기운은 시들해졌지만, 브랜딩을 위한 패션 하우스들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니까요. 다채로운 프린트 중 런웨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한 건 패턴으로 재해석한 로고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도나텔라 베르사체 여사는 새로운 컬렉션을 위해 키 프린트로 삼을 만한 브랜드 로고를 개발했으며, 펜디에서 첫 번째 레디 투 웨어를 선보인 킴 존스는 하우스 아카이브에 있던 곡선형의 ‘FF’ 로고를 되살려 슬립과 스타킹에 재현해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로고 브랜딩을 한 예도 있죠. 이번 시즌 빅 이슈였던 구찌와 발렌시아가의 컬래버레이션인 해커 프로젝트. 구찌의 아레아 컬렉션에서 먼저 공개한 이 특별한 컬렉션은 구찌의 더블 - G 로고를 더블 - B 로고로 변형시키는 등 두 하우스의 코드를 섞기 위해 로고를 사용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CABARET MOOD
패션계 사람들은 모임 인원 제한이 풀리면 아마 제일 먼저 파티를 열 듯합니다. 런웨이에 온통 파티장에서 입기 좋은 옷들이 가득하기 때문이죠. 영화 <위대한 개츠비>나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본 듯한 1920년대 재즈풍의 플래퍼 룩을 비롯해 1960년대를 대표하는 큐비즘과 모즈 룩, 1980년대 디스코 룩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유행에 상관없이 비즈와 주얼, 페더, 프린지, 러플 등을 장식해 조명과 움직임에 최적화된 춤추기 좋은 의상들을 선보였습니다. 실제로 파코 라반과 톰 포드 컬렉션에선 마치 춤추는 모션을 하는 듯한 모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중에서 베스트 룩을 꼽자면 단연 프라다와 지방시. 반짝이는 그린 스팽글 드레스에 퍼 숄을 걸치고 앞섶을 살포시 잡은 프라다 여인과 아티스틱한 드레스 위에 블랙 재킷을 걸치고 깃털 자락을 휘날리며 물 위를 걷는 지방시 걸은 마치 파티가 끝난 뒤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연상되어 더욱더 기억에 남습니다.
OPTIMISTIC HUES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됐음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델타 변이까지 등장하며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평소처럼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은 무한 긍정주의로 장밋빛 미래를 논하고 있죠. 그 증거는 바로 컬러. F/W 시즌임에도 따스한 봄날을 연상시키는 달콤한 캔디 컬러와 알록달록한 무지개 컬러가 런웨이를 수놓았기 때문입니다. 형광펜이 떠오르는 컬러 코트를 연달아 선보인 프라다를 비롯해 비비드 레드에서 피스타치오 그린, 청록색 등 상큼한 컬러 팔레트를 완성한 몰리 고다드, 레트로풍으로 타이츠와 슈즈를 깔맞춤해 쌍둥이 모델들이 등장한 것 같은 베르사체까지, 칠흙 같은 블랙 컬러가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컬렉션 중간중간에 팝업처럼 등장한 상큼한 컬러 룩은 기분 전환에 꽤나 도움이 됩니다. 물론 컬렉션이 밝아 보이는 배경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시폰과 오간자, 레이스 같은 얇은 시스루 소재를 사용한 것도 한몫했죠.
KEEP IT COZY
팬데믹 시대의 스타일 키워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바로 ‘컴포트Comfort’. 이전엔 남에게 뽐낼 수 있는 멋을 앞세웠다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요즘 세대에게 옷은 실용성과 착용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 시즌에 파자마와 애슬레저 룩이 인기를 끌었다면, 이번에는 니트 소재가 독보적 사랑을 받고 있죠. 단순히 스웨터에 그치지 않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벌키한 드레스와 상하의를 한 벌로 연출한 니트웨어, 손맛 가득한 판초가 대거 등장하면서 스타일링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디자이너들은 롱 니트 원피스 속 발등을 덮는 플레어 팬츠를 매치해 세련된 레이어드 룩을 선보였으며, 니트 쇼츠에는 타이츠 혹은 롱부츠를 매치해 노출 부위를 최소화했습니다. 똑같은 옷일지라도 슬리퍼를 매치하면 라운지웨어로, 스틸레토 힐과 주얼리를 매치하면 파티 룩으로 변신하는 게 니트웨어의 매력. 특히 찬바람이 부는 계절에 캐시미어 소재로 몸을 감싸는 것보다 더 위안이 되는 것은 없지 않나 싶네요.
HIGH & LOW
한동안 주춤했던 스트리트 룩의 귀환이 시작됐습니다. 맥시멀리즘과 맞닿은 이 트렌드는 어쩌면 하이엔드 스트리트 패션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캐주얼 아이템과 정반대 성격의 하이패션(혹은 쿠튀르) 아이템을 믹스 매치함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이죠. 그 배경에는 지난 시즌 유행한 스웨트 팬츠의 자리를 꿰찬 슬라우치 진이 있습니다. 자유분방하고 편안한 데님 팬츠에 쿠튀르 감성의 주얼 장식 드레스나 드레이프 블라우스, 스팽글 톱 등을 매치해 여성미를 부각시키는 식이죠. 단순히 데님 팬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핑크 바이커 쇼츠에 화려한 비즈 장식 톱을 입거나, 컬러 시폰 드레스에 아가일 베스트를 레이어드하고, 풍성한 볼륨의 공주풍 스커트에 매니시한 항공 점퍼나 후디, 캡을 매치하기도 합니다. 분명 과한 면이 있지만, 디자이너들의 룩을 참고해 잘만 연출하면 이보다 더 트렌디할 수는 없을 겁니다.
SKI BUNNIES
바깥 활동이 금지된 탓일까요? 집 안에 콕 박혀 여행을 유예하자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는 자연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선은 자연스럽게 윈터 액티비티를 향한 열망으로 이어졌죠. 올겨울엔 마스크를 벗고 스키 슬로프를 질주할 수 있길 바라며 말입니다. 오죽하면 미우 미우와 톰 브라운은 산꼭대기에서 쇼를 진행했을 정도. 샤넬과 디올, 지방시 등 내로라하는 패션 하우스에서는 탁 트인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입기 좋은 다채로운 아이템들을 쏟아냈습니다. 매년 등장하는 다운 점퍼나 퍼 아우터는 기본, 스키를 즐기기 좋은 패디드 소재의 점프슈트와 트랙 슈트, 아프레 스키 룩에 아가일 니트까지, 디자이너들은 겨울 휴가지를 설산으로 미리 정해놓기라도 한 듯 스타일리시한 방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전보다 액세서리 라인을 강화했다는 것. 퍼 백과 니트 장갑, 스누드, 패딩 & 러버 부츠 등 기존에 입었던 스키 룩에 새로운 액세서리만 첨가해도 한층 트렌디한 액티비티 스타일링을 완성할 수 있을 거예요.
editor 김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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