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최현석
셰프 최현석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요리를 먼저 맛볼 것
최현석은 ‘쵸이닷’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얼마 전에야 비로소 오너 셰프가 되었습니다. 셰프 인생 22년 만에 일어난 일. 자영업자가 되었으니 하고 싶은 걸 다 해볼 수 있지만 그만큼 해야 될 일도 더 많아졌다고. 입으로는 쉬고 싶다면서 돌아서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줄줄이 읊습니다.
몇 년 전에, 그러니까 셰프 최현석이 한창 스테이크에 소금을 뿌려대거나 허세 섞인 농담을 던지는 모습으로 전 국민에게 유명해졌을 즈음 우연히 그의 요리를 직접 먹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서 깊은 위스키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위스키를 테마로 한 특별한 분자 요리를 선보이는 자리. 그날 이후로는 최현석이 TV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든 오로지 그의 요리만 떠오르곤 했습니다. 최현석의 요리를 조금이라도 먹어본 사람이라면 결국 알게 되죠. 그간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었건, 최현석도 그저 요리로 말하는 셰프라는 사실을. 재료에 대한 이해와 탐구, 메뉴 개발을 위해 쏟은 시간과 노력이 온전히 담긴 그의 음식들을 먹어본 후에야 비로소 셰프 최현석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촬영차 광저우 출장을 갔다 엊그제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 ‘책상 다리 빼고 다 먹는다’는 게 바로 광저우에서 나온 말이라는데, 많이 먹고 영감도 많이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광저우 사람들이 먹는 거 열심히 다 먹어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견문을 통해 영감을 많이 얻었는데, 이제는 정말 열심히 다녀도 새로운 게 하나 나올까 말까 하죠. 너무 다양한 시도를 해봐서 그런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일이 전처럼 쉽지 않더라구요.
출장의 여파인지, 고민 때문인지 많이 피곤해 보입니다.
요즘 전반적으로 고민이 많습니다. 철마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얼마 전에 선보인 여름 시즌 메뉴를 완성하는 데도 5개월 정도가 걸렸는데요. 그런데 곧 또 가을 메뉴를 준비해야 하죠. 여름 메뉴를 심사숙고해서 개발하고 정말 괜찮다고 생각해서 내놓은 지 이제 일주일 정도 됐는데, 막상 내놓으니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해서 오늘부터 또다시 조금씩 수정하고 있습니다. 뭐, 시뮬레이션을 충분히 해도 그런 일이 발생하기도 하죠.
한 가지 메뉴를 완성하기 위해 몇 십 번씩 만들어본다고 들었습니다.
많게는 70~80번씩 만들어보기도 합니다. 만족할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스트레스나 중압감, 자괴감이 들어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지만, 직원들과 함께 테스트하면서 새로운 걸 완성했을 때 드는 성취감에 재미있고 즐거운 작업이죠.
얼마 전 SNS에 치기 어린 시절의 철없음과 용기를 회상하는 글을 쓴 적이 있더라구요. 천재인 줄 알았는데 천재가 아니더라는. 그래서 더 열심히 한다는 얘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여태껏 개발한 천 몇 백 가지 메뉴를 다시 돌아봤더니 너무 거칠고 투박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치기 어리게 메뉴도 한두 번 만들어보고 턱턱 내보내곤 했는데, 다시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눈에 띄더라구요. 물론 그땐 반응도 나쁘지 않고 나 스스로도 그게 괜찮은 줄 알고 냈겠지만.
얼마 전 SNS에 치기 어린 시절의 철없음과 용기를 회상하는 글을 쓴 적이 있더라구요. 천재인 줄 알았는데 천재가 아니더라는. 그래서 더 열심히 한다는 얘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여태껏 개발한 천 몇 백 가지 메뉴를 다시 돌아봤더니 너무 거칠고 투박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치기 어리게 메뉴도 한두 번 만들어보고 턱턱 내보내곤 했는데, 다시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눈에 띄더라구요. 물론 그땐 반응도 나쁘지 않고 나 스스로도 그게 괜찮은 줄 알고 냈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최현석 같은 셰프들은 쉽게 쉽게 새 메뉴를 탄생시키는 줄 알 거 같아요. 이렇게 몇 십 번씩 만들어보며 고뇌하는 줄은 모르겠지요.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스스로를 달래는 방법이 있습니까?
별다른 방법은 없어요. 스트레스를 풀려고 쇼핑 같은 걸 해봐야 결국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니까. 답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 뿐이더라구요. 계속하다 보면 결국 뭐라도 나오게 마련이죠. 저도 요즘처럼 이렇게 한 메뉴당 70~80번까지 시도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메뉴가 10가지 정도 있으니 전부 700~800번 실패한 거나 다름없죠. 미친 것 같기도하죠.(웃음) 전에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면 더 좋은 일을 많이 했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몇 년 전 최현석의 요리를 맛본 적이 있는데요. 최현석 하면 생각나는 창작 요리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람들이 이 요리에 놀라기만 하다 자칫 맛을 느낄 순간은 놓쳐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이전의 요리가 퍼포먼스 위주였기에 저 또한 그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음식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건 무엇보다 맛이니까. 전에는 맛, 비주얼, 창의성의 비율을 어느 정도 맞추면 된다고 생각해서 맛이 조금 덜해도 창의적이면 만족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하겠더라구요. 이젠 맛이 100%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의 밸런스는 곱하기라고 생각하면 되는거예요. 맛이 0점이면 나머지가 아무리 1,000점이어도 결국 0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제는 창의적인 셰프들이 많이 나와서 경쟁이 치열한데, 그럼 결국 맛있게 하는 셰프가 이기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새로운 철학이 새로운 메뉴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네요. 파인 다이닝이지만 확실히 전보다 힘이 덜 들어간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조스바, 어묵 꼬치 등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창작 요리는 위트가 느껴져 좋았습니다.
요리사가 요리에 뭔가 메시지를 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런데 파인 다이닝 신에서는 그 메시지를 너무 심각하게 풀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다행히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파인 다이닝이 많이 편해지는 추세로 바뀌고 있어서 조금 더 재미있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요리를 만들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죠. 예를 들면 조스바를 패러디해 만든 쵸이스바는 안에 연어 초밥이 들어 있는 메뉴인데, 아까 말한 70~80번 넘게 만들어본 메뉴가 바로 이것이예요. 이 메뉴가 등장하기만 하면 손님들이 모두 빵 터져서 웃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답니다. 요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 이곳만큼은 즐겁고 편한 파인 다이닝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어요.
국내 미식 문화가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약한 부분이 많은 게 사실. 셰프의 입장에서 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미쉐린 원 스타, 투 스타인 해외 셰프들보다 더 잘하는 국내 셰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쿄 등과 비교하면 다이닝 시장의 규모가 너무 작아 이들의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안타깝죠. 서울을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미식의 도시로 만들어야 된다는 사명감이 있어서 요즘엔 해외 쪽과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해서 국내의 훌륭한 셰프들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내 궁극적인 꿈이 교육 사업인 것도 연관이 있어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이 찾는 좋은 환경의 미식 도시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죠. 그래서 쉬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요. 그래서 슬프죠.(웃음)
photographer 안형준
editor 천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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