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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5월, 감사 인사의 좋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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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가정의 달이 되니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미술 시간에 부모님과 선생님께 드리기 위한 카네이션을 정성들여 만들었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진부한 문구지만 마음을 담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손편지를 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오면서 그 모든 것이 이모티콘 하나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간편해진 게 사실이지만 아쉬운 마음도 들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종이와 펜을 잡아보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이어갈지 막막해지는 경험, 모두 해보셨겠죠? 

 그런 여러분들을 대신해 에디터가 필력 있는 이들에게 감사 편지에 관한 자문을 구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 인용하기 좋은 문구와 같은 다채로운 답변이 돌아왔네요. 혹시 5월을 맞아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수려하고 속 깊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으신 분 계신가요? 이들의 진심 어린 글귀를 눈여겨보세요. 

늬가 준 요보의 꽃 잎사귀 위에서 잠을 자고,
늬가 준 수건으로는 아침에 얼굴을 씻고,
늬가 준 얼룩진 혁대로 나의 허리를 동이고, 
이만하면 나는 너의 애정으로 목욕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중략)

나는 너의 선물이 욕된 사랑의 변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늬가 표시하는 애정의 의도를 묻지 않고, 
늬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랑의 궁극을 늬가 알지 못하고, 
나에게 표시하여 줄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을 원하는…
이것은 반드시 우리의 사랑이 죄악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믿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 김수영, ‘겨울의 사랑’,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 중에서


 이 시를 만나기 전 제게 김수영 시인은 ‘자유’의 시인이었다면, 이 시를 만난 후로는 ‘사랑’의 시인이 되었습니다. 김수영은 이 시를 세상에 발표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사랑하는 한 여인에게 몰래 쓴 편지일지도 모르죠.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비록 그것이 죄악에서 생겨난 사랑일지라도, 이러한 시를 선물받은 여인이라면, ‘애정으로 목욕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BY 김소연 민음사 편집자


 감사의 마음을 글로 적어본 게 언제였을까요? 한마디 말로 쉽게 전한 적은 있지만, 직접 써서 전한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서가를 둘러보다 2009년에 출간한 제 소설집이 눈에 띄었어요. 그렇죠, 소설집 마지막에는 으레 감사의 말이 실리는 법이죠. 꺼내 펼쳐봅니다. 7년 전의 저는 이렇게 적었더군요.

‘내가 이 짧은 글을 좀처럼 쓰지 못했던 까닭은,
감히 당신들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게는 단 한 명의 독자가 복수로 존재한다.
당신, 당신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저는 여전히 한 명의, 그러나 복수로 존재하는 독자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좀 더 길게 쓸 수 있다면, 하나씩 이름을 불러볼 수 있으련만…. 변명일지도 모르지만요. 한데 감사의 말에는 가끔, 어쩌면 자주 변명이 동반되기도 하잖아요? 이 말로 겸연쩍은 감사 인사를 슬쩍 마무리하기로 합니다. 

BY 한유주 소설가

 고마움을 전합니다. 여기는 맑은 날 중에 가끔은 비가 오고, 안개도 끼고, 흐린 날도 꽤 많고,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덥습니다. 그 숱한 날이 지나는 동안 겨우 며칠이나 될까요? 당신을 생각하는 날이. 그런 날이면 고맙다는 말을 혼자 되새기곤 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는 맑은 날, 비 오는 날, 흐린 날, 더운 날, 추운 날이 차례 없이 지나갑니다. 충분하지 않은 제가 그 속의 공기를 마시며 걷고 마시고 먹고살고 있습니다. 그 안에 평온함과 강건함이 있다면 당신의 덕입니다. 평범한 날씨 속에 특별한 당신의 빛을 봅니다. 그 빛을 향해 이렇게 고마움을 가슴 깊이 전합니다.

BY 서효인 시인


이런 텅 빈 밤에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나면,
커다란 무언가가 내게 찾아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침묵은 언제나처럼 압도적이죠.
내가 받는 것은 당신의 응답이 아니에요.
있는 건 항상 나의 말뿐이었죠.
하지만 나는 채워져요. 무엇으로 채워지는 걸까요?

포기가 포기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걸 이해한다면, 우리에겐 두려움도 없을 거예요,
사랑해요.

- 존 버거, <A가 X에게> 중에서

 존 버거의 소설 <A가 X에게>는 제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 채워진 이 책에선 A가 감옥에 갇힌 X에게 편지를 씁니다. 만날 수 없어도, 만질 수 없어도, 심지어 ‘우리’에게 미래가 없어도 A는 X에게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죠. 응답이 없어도, 대가가 없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자체로 선물이 아닐까요? 

BY 정용준 소설가

“꼭 선생님을 이기겠습니다.”

시인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항상 저의 모범이자 기준으로 삼아온 스승에게 첫 시집을 내고 감사 편지를 전하며 적은 말입니다. 습작을 하던 시절에는 스승 같은 시인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한편, 저로서는 도저히 그런 시인이 될 수 없으리라는 절망 속에서 시를 써나갔던 것 같습니다. 첫 시집을 낸 뒤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장 구체적으로, 그리고 절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른 또 다른 말은 이것입니다. 

“당신에게 나의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 길을 걸으며 당신을 꼭 앞지르겠습니다.”

대체 언제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지금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깊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품은 채로.

BY 황인찬 시인

 쓰지 신이치 선생님께.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번 생에 제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 중 하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이에게 오롯이 몰입하는 법, 함부로 단정 짓기 전에 ‘왜?’를 묻는 법을 제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를 향한 측은지심을 잃지 않는 한,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에 대해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세월을 거슬러 여전히 젊을 수 있음을 보여주신 선생님. 그 삶을 좇아 걸어가겠습니다. 이 봄, 내내 평안하시기를 기원하며. 

 쓰지 신이치는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슬로 라이프> <행복의 경제학> 등을 집필했습니다. 아시아의 평화와 환경을 생각하는 ‘피스 앤 그린 보트’에서 만나 벗이자 스승으로서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BY 김남희 여행작가


Editor 장인지 / Digital 이숙희 
Photographer 이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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