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LIFE /

여름 방학 유럽 여행 추천, 이탈리아 예술 투어

본문

 이탈리아는 명품과 미식, 아름다운 경치로 익숙한 여행지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탈리아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탈리아의 도시 중에는 독창적인 예술혼이 깃든 곳이 많습니다. 고로 이번에는 ‘도자기’를 키워드로 이탈리아를 새롭게 재조명해볼까 해요. 예술혼 가득한, 수려한 도자기가 가득한 이탈리아 도시들, 함께 떠나보실까요? :) 


 이탈리아 도자기와 타일, 그 불가분의 관계

(위) 화려한 마욜리카 타일로 지붕을 장식한 성당이 있는 나폴리 구시가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입니다. 
(아래) 파엔차 도자기 축제의 부스 전경. 부처 조각상과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남자가 묘하게 대조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격자무늬의 하얀 문과 간결한 응접실 의자, 보라색 쿠션의 조화가 숨막히게 화려하고 아름다워요. 십중팔구 벽지일 거라고 생각하는 벽의 꽃은 바로 타일입니다. 벽 전체가 타일 모자이크 작품인 셈이죠. 섬세한 예술 감성과 창의력 없이는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죠. 거기에 또 하나, 미학적 전통 계승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탈리아 회사 비사차 Bisazza의 작품 ‘알렉산드리아 모듈’의 이야기입니다. 

 비사차는 단언컨대, 세계 최고의 타일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에 세계 최고의 피겨린 제조업체 야드로Iladro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비사차가 있죠. 비사차는 레나토 비사차Renato Bisazza에 의해 이탈리아 중북부의 비첸차Vicenza 알테Alte에서 1956년에 탄생했습니다. 비사차가 비첸차에 설립됐다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 자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는 이 지역의 풍부한 고령토로 인해 예전부터 발달한 도자기 산업을 발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근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전해질 수밖에 없는 강력한 르네상스의 미적 전통입니다.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라벤나Ravenna라고 하는 소도시가 있습니다. 단테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4~6세기 경 초기 비잔틴 문화를 꽃피우고 모자이크 예술을 발전시킨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만 총 8곳이 있습니다. 이 중 6세기 동로마제국의 문화와 종교, 예술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산 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갈라 플라치디아 영묘Mausoleo di Galla Placidia, 산타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Sant’ Apollinare Nuovo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진수인 신비로운 모자이크를 보여줍니다. 이를 보면 비사차가 이들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죠. 

 비사차는 현재 인테리어와 아웃도어 장식을 이끄는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도기 타일이 아닌 자기 타일을 만들거니와 그 무늬와 그림, 어떤 것이든 마치 벽지처럼 자유자재로 막힘이 없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비사차 타일을 도입한 많은 호텔과 식당, 건물들이 각종 디자인 관련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디자인의 대부로 불리는 디자이너 겸 건축가인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는 비사차 자문위원 중 한 사람으로 비사차 타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으로서는최초로 2014년, ‘유럽인 건축 대상The European Prize for Architecture’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멘디니 같은 아티스트들의 독보적 예술성은 위와 같은 비잔틴 시대의 전통이 14~16세기 르네상스와 결합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바탕이 이탈리아의 독특한 감성을 나타내는 도자 문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이탈리아 도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타일을 언급한 이유는 도자기와 타일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도자기의 대명사라 할수 있는 마욜리카Majolica 역시 스페인 타일 문화의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욜리카는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화권에서 건너와 스페인 세비야와 발렌시아에서 발전한 러스터 광택 유약 도기나 주석 유약 석기가 스페인의 마요르카Mallorca 섬을 거쳐 이탈리아로 유입되어 꽃을 피운 것입니다. 이를 마요르카 상인들이 중개해 이름이 ‘마욜리카’가 되었죠. 항구도시로 시칠리아의 이슬람 도기 문화를 일찍부터 받아들인 나폴리Napoli는 마욜리카의 이러한 배경을 잘 보여줍니다. 나폴리는 프랑스 영토이기도 했다가, 또 한때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도 했어요. 그 이전에는 이슬람 무어인들의 영향력 내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나폴리의 보고 즐기는 모든 문화는 한 용광로에서 뒤섞인 ‘혼혈’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마욜리카가 있어 아름다운 카프리

(위) 피엔차 도자기 축제 풍경 .
(아래) 다비드 조각상 복제품이 놓여 있는 팔라초 델라 시뇨리아 광장.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탈리아는 북부의 경공업과 남부의 농업으로 경제 기반이 나뉘어 있어 남부에 있는 나폴리에서 카포디몬테Capodimonte라는 유명 도자기가 탄생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스페인 왕실의 의지와 북아프리카 및 서아시아 이슬람 세계에서 유입된 러스터와 타일 문명의 영향이죠. 이러한 연유로 나폴리, 카프리Capri 섬, 소렌토Sorrento포시타노Positano를 비롯한 아말피Amalfi 해안의 도시에 이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가장 뛰어난 마욜리카 타일 장식이 있는 곳은 카프리 섬의 키에사 디 산 미켈레Chiesa di San Michele, 영어로 세인트 미첼St. Michael 성당입니다. 나폴리 항구에서 쾌속선으로 불과 30여 분이면 도착하는 카프리는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예로부터 천혜의 휴양지였다는 사실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티베리우스 황제의 별장 터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산 미켈레 성당은 카프리 섬 아나카프리Anacapri 지역 역사 지구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을 중심인 비토리오 광장Piazza Vittoria에서 걸어서 몇 분이면 도착하죠. 마카엘 대천사에게 바친 이 성당은 세라피나 디 디오Serafina di Dio라고 하는 수녀가 카프리 주교인 미켈레 갈로Michele Galo의 허락을 얻어 건립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169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20년 뒤인 1719년에 완공됐어요. 그러나 화려한 마욜리카 타일 장식은 18세기 나폴리에서 활동했던 가장 뛰어난 세라믹 아티스트 가운데 하나였던 레오나르도 키아에제Leonardo Chiaiese가 성당이 생긴 지 42년 후인 1761년에 완성했습니다.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타일 장식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를 주제로 하고 있죠. 아담과 이브는 물론, 에덴동산의 각종 과일과 꽃, 나무, 동물들이 묘사돼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한 나폴리 인근의 해안 도시 아말피와 포시타노도 특유의 마욜리카 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아말피로 가는 길은 프로방스 니스Nice에서 모로코로 가는 절벽 길과 비슷하죠. 지중해 바닷가에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절벽을 깎아 만든 굽이굽이 경사길이라 절경일 뿐만 아니라 스릴이 넘칩니다. 그렇게 버스 승객들의 연이어 이어지는 탄성을 듣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왜 죽기 전에 봐야 할 곳으로 선정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어요

 아말피는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70km 지점에 위치한 물리니 계곡의 좁은 골짜기 마을입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경치가 뛰어나고 기후도 온난해서 휴양지로 제격이에요. 지금이야 관광업이 이 마을의 주요 생업이 됐지만, 9세기에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해상무역에 나서 제노바Genova피사Pisa 같은 쟁쟁한 도시국가들과 경쟁했습니다. 그 당시 이 조그만 마을 인구가 무려 7만 명이나 되었다니, 오늘날 모습으로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마을 전체가 관광지고 휴양지인지라, 성당 몇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마을의 전부에요. 마욜리카 도기와 타일이 기념품의 주류인 것은 당연하고, 소렌토처럼 레몬으로 만든 증류주인 리몬첼로Limoncello를 파는 가게들도 곳곳에 있습니다. 레몬이 지역 특산물이라 이곳의 도기나 타일들은 레몬과 이를 풍성하게 가꿔주는 햇살을 오브제로 삼은 것이 많습니다. 리몬첼로는 아말피 해안에서 생산한 스푸사토Sfusato라는 품종의 레몬을 사용한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아말피에서 8km 떨어진 포시타노가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휴양지로 탈바꿈한 것은 1950년대부터입니다. 1953년, <하퍼스 바자> 5월호에 노벨 문학상 작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에세이 ‘포시타노에 홀리다Positano Bites Deep’가실린 후 인기도가 급상승했어요. 이 에세이에서 존 스타인벡은 이 마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머무를 때는 현실 같지 않지만,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로 다가오는 꿈의 장소’가 바로 포시타노인 것입니다. 포시타노도 아말피와 마찬가지로 세련되고 독특한 분위기의 마욜리카 도자기를 파는 가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포시타노로 가는 길가에는 포시타노에 조금 못 미쳐 마욜리카 도기를 만드는 세라미카 카솔라Ceramica Casola 회사의 전시장도 있습니다. 


새로운 전설의 시작, 지노리

(위)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던 지오 폰티의 1923년 작품 <구름 위의 여자>.
(아래) 피엔차 도자기 축제 풍경.

 이탈리아에는 전국적으로 중소 도자기 회사들이 수백 개나 있고,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솜씨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 중심지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토스카나Toscana와 베네치아가 중심인 네토Veneto 지방이에요. 도자기 도시로서의 피렌체 명성을 드높인 곳은 역시 지노리Ginori입니다. 독일 마이슨Meissen, 헝가리 헤렌드Herend, 덴마크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영국 웨지우드Wedgwood를 흔히 세계 4대 도자기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정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지명도와 유명세에 있어 지노리라는 이름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노리를 접하는 순간, 왜 이 이름이 4대 도자기와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지 금세 알 수 있어요.

 카를로 안드레아 지노리Carlo Andrea Ginori 후작이 피렌체 인근 세스토 피오렌티노Sesto Fiorentino의 한 마을인 도치아Doccia에 있는 자신의 빌라 근처에 ‘도치아 도자기 공장’을 세운 것은 1735년의 일입니다. 피렌체가 위대한 조각가들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당연히 지노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노리는 피렌체의 주요 바로크 조각가들에게서 왁스 모델과 주형을 사들여 매우 커다란 피겨린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18세기 마이슨 도자기 같은 다른 공장들의 피겨린이 사소하고 조그마해 보이게 할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노리는 로마 시대의 유명한 조각 작품도 도자기로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탈리아 바로크와 신고전주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지노리는 몇 번 더 복잡한 머니게임의 희생양으로 노예처럼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가 2013년 1월 결국 파산하고 말았어요. 그나마 같은 해 피렌체 법정에서 이를 다시 사들인 회사가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였다는 사실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요? 전통의 명가 지노리를 사들이는 데 들어간 돈이 고작 1천3백만 유로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 회사가 지닌 가치에 비교하면 거의헐값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노리의 새로운 부티크 스토어는 피렌체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론디넬리 거리Via deRondinelli 17번지의 팔라초 지노리 건물에 있습니다. 건물의 역사는 무려 500년이 다 되어갑니다. 지노리가 이곳에 첫 매장을 연 게 1802년이니, 그때부터 따져도 한 장소에서 한마음으로 피렌체 시민들에게 도자기를 선보인 세월이 210년을 훌쩍 넘깁니다.

 피렌체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화공들이 길가 여기저기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길 위에 ‘모나리자’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등 명화가 새롭게 피어나죠. 지노리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도자기 회사들이 피렌체의 위대한 예술혼처럼 결코 꺾이지 않길 기도하며... 여러분도 너무 늦지 않게 이탈리아의 도자기와 예술혼을 만나러 떠나보시길 권합니다! 


writer 조용준 (아트 트래블 전문 저술 전문가)


[연관기사]

유럽 여행 어디로? 이탈리아의 숨겨진 보물, 마르케
건강한 휴식의 동반자, 브레오
꽃청춘 따라가볼까? 아름다운 아이슬란드!

RELATED CONTENTS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