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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유성우와 드넓은 평야, 몽골 고비사막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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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지평선을 지나

‘드넓은 평야’, 이 진부한 표현은 아마 몽골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공항을 나서면서부터 보이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한 초원. 울퉁불퉁한 오프로드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태양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사막이었다.

editor 엄지희(freelancer)

 

고비사막까지 이동하는 낙타와 여행자들의 모습이다.

상상의 나래 속에서 펼쳤던 몽골의 풍경은 공항 밖에 서부터 시작된다. 주차장 너머로 나무 한 그루 없는 높은 언덕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보인다. 주변에 건물이라곤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국제공항 하나 뿐이다. 그야말로 초원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공항이 자리 잡은 셈이다. 몽골 여행에서 꼭 필요한 이동 수단은 ‘푸르공’이라 불리는 사륜구동 러시아 자동차 ‘우아즈 부한카’다. 잘 닦인 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길이 없는 비포장도로를 주행할 때가 더 잦으니 울퉁불퉁한 길도 거침없이 질주하는 차가 필요하다. 단, 에어컨도 없고 길이 거친 만큼 차체의 흔들림도 극심하지만, 창밖에 펼쳐진 풍경에 반해 승차감은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수평선이 아닌 지평선을 마주하는 순간이 계속 이어 지기 때문이다.

낮게 흘러가는 구름이 초원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시야를 막는 건물이나 산, 나무가 없어 물결치는 초록빛 평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초원의 양과 소, 말, 낙타와 염소까지, 이질적인 아름다움에 긴 이동 시간도 여행의 일부분이 돼버린다. 가이드는 새하얀 부추 꽃이 핀 초원에 잠시 차를 세웠다. 풀밭을 밟을 때마다 꽃향기가 화사하게 번졌고, 눈 앞에는 양들이 여유롭게 누워 있었다. 가축 수가 1천 마리가 넘으면 그 유목민은 몽골에서 꽤 부유한 축에 속한다고. 직선으로 길게 뻗은 도로에는 종종 양들이 길을 건넌다. 그토록 고요한 평야라니. 도시 소음에 익숙한 청각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1. 부추 꽃이 핀 초원에 방목 중인 양 떼. 2. 차강 소브라가의 날카로운 절벽 끝에 여행자들이 서 있다. 3. 차강 소브라가 절벽 사잇길에 난 길. 4. 오프로드를 거침없이 달리는 푸르공의 운전석.

하루 500KM 이동, 고비사막을 향하여

고비사막까지 가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300km에서 많게는 700km를 달려야 한다. 그러니 중간중간 작은 마을에 멈춰서 식사하고, 그날 밤 먹을 음식 장을 본다. 당연히 여행지도 하나씩 둘러본다. 공항 출발 후 가장 먼저 찾게 된 곳은 ‘차강 소브라가’. 하얀 탑이라는 의미를 지닌 사막 지형으로, 이곳은 먼 옛날 바다였다고 전해진다. 차강 소브라가는 모래로 덮인 사막이 라기보다는 모든 것이 말라가는 황폐한 땅이다. 빛바랜 식물들은 만지면 바스락 하고 부서질 만큼 뻣뻣하다. 평지인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아찔한 높이의 절벽 일 때도 많다. 아래로 색색의 바위와 돌들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풍경, 이곳이 왜 ‘몽골의 그랜드캐니언’이란 별명이 붙었는지 알 것 같다. 절벽 사이, 아찔한 경사로로 내려가면 크고 작은 언덕이 온통 주변을 덮고 있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땀이 줄줄 흐르면서도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금세 젖은 이마를 식혀준다. 뜨겁고 건조한 공기와 숨 쉴 때마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모래 질감. 사막임을 알 수 있는 가장 큰 증거다.

몽골의 3대 협곡 중 하나인 ‘욜링 암’도 지나쳤다. 평야와 초원, 사막 이미지와는 달리 이곳은 온통 거대하고 깊은 협곡이 이어진다. 1년 내내 얼음을 볼 수 있을 만큼 춥고 서늘한 지역이지만, 지구온난화가 심해진 지금, 여름엔 얼음을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두툼한 전통 복장을 하고 다닌다. 욜링 암은 ‘욜매’라 불리는 거대한 새가 사는 지역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실제로 협곡 사이를 걷다 보면 머리 위로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새를 종종 만날 수 있다. 독수리, 매의 일종으로 사냥감의 단단한 뼈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부러뜨린 후 먹을 만큼 영리하다고. 협곡 입구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트레킹, 다른 하나는 말을 타고 가는 것이다. 대부분은 말에 올라 천천히 가이드를 따라간다. 전문가들이 함께해 낙마의 위험은 덜하지만 두 손을 꼭 고삐에서 놓지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협곡 입구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좁고 가파른 절벽 사이에 있어 말을 타고 가기 어렵다. 잠깐 말에서 내려 짧은 트레킹을 즐겼는데, 나무 없는 돌산과 거대한 언덕이 묘하게 신비롭다. 확실한 건 쉬이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라는 사실이다.

 

1. 게르 모형의 기념품. 2. 몽골인들의 마음을 덥혀주는 전통 수테차이. 3. 게르의 문은 낮아서 허리를 잔뜩 숙인 채 들어가야 한다. 4. 해 질 무렵, 길이 없는 초원을 달려가는 자동차. 5. 몽골의 전통 요리 허르헉과 구운 감자, 당근.

전기도, 통신도 없는 초원에서의 하룻밤

‘몽골’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바로 ‘게르’다. 게르는 몽골 유목민들이 지내는 주거 공간이다. 물론 ‘집'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그 속에 너무나 많은 역사와 삶, 이야기가 숨어 있다. 몽골 여행에선 고급 호 텔보다 더 설레는 게 게르에서의 하룻밤이다. 실제로 여행하는 내내 초원 한가운데에 있는 게르에서 보내 는 밤이 늘 기대되었다. 나무로 만든 뼈대에 두꺼운 천을 씌운 전통가옥, 원통 형의 벽과 둥근 지붕, 그리고 지붕을 지탱해주는 나무 기둥이 있다. 내부엔 중앙에 테이블, 그리고 가장자리 에 5~6개의 침대가 놓여 있다. 유목민들은 초원과 벌판에서 일을 한 후 집에 돌아오면 이렇게 테이블에 모 여 앉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하루 일과를 도란도란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게르에는 전기도, 콘센트도 없다. 운이 좋으면 전자기기 충전이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해지기 전까지만 가능하다.

아, 그리고 화장실. 몽골 여행에서 화장실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평범한 공중화장실조차 그리운 지경에 이르는, 이곳의 화장실은 간이 화장실에 가깝다. 바닥을 깊게 판 땅 위에 변기를 얹어놓은 형태다. 아주 좁고 파리가 득실대서 갈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밤엔 길을 밝히는 불빛조차 없어 어둠 속에서 조심조심 걸음을 내디뎌 화장실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뿐. 딱 하루만 견디면 그다음날부터는 그 모든 것들이 익숙해진다. 이 당연한 생리 현상도 몽골 여행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와이파이도, LTE도, 통신도 잡히지 않는 초원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건 꽤 낭만적이다. 일몰과 은하수, 일출 을 매일 감상할 수 있다. 할 거라곤 그저 의자를 가지고 나와 멍하니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일 뿐.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평야인지라, 멀리 가지 않고 게르 주변만 빙글빙글 맴돌게 된다. 그리고 끝내 밤이 오면 눈물이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메우는 아름다운 별들이 떠오른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별자리, 눈을 깜빡일 때마다 떨어지는 유성우들, 하늘에 오색 빛 구름을 만들어내는 은하수까지. 그걸 볼 수 있기에 게르에서의 밤을 늘 기대하게 되고, 또 기다려진다.

 

1. 홍고르 엘스의 거대한 언덕으로 향하는 사람들. 2. 해발 300m이지만 경사가 매우 가팔라 오르기 어렵다. 3. 쌍봉낙타를 타고 고비사막까지 갈 수 있다. 4. 사막 앞에서 낙타를 키우며 사는 유목민들의 집.

노래하는 모래언덕으로

아라비아사막과 함께 세계 3대 사막 중 하나인 고비사막. 우리가 목표로 한 곳은 해발 300m 높이, 180km 길이의 모래언덕인 ‘홍고르 엘스’였다. 노래하는 모래라는 뜻으로, 바람이 불 때마다 풀썩 일렁이는 모래 소리가 마치 노래처럼 들린다고 하여 지어졌다고. 홍고르 엘스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는 건 울퉁불퉁한 언덕을 달려가던 차창 밖으로 황금빛 언덕이 희미하게 보일 때쯤부터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지 않을 만큼 아주 멀리서부터 보인다. 몽골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마주한 순간이다. ‘겨우 해발 300m인데’라는 생각은 아주 오만한 판단이다. 우선 쏟아질 듯 가파르게 우뚝 서 있는 모래언덕은 도저히 사람이 걸어서 올라갈 경사도가 아니다.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언덕길,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은 성냥개비처럼 작아 보인다. 그래도 그 너머의 풍경 이 궁금해 도저히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불필요한 짐은 모두 내려놓고, 신발 벗고, 물 한 병을 들고 올랐다. 발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밀려오는 모래 알맹이들. 그리고 걸음마다 잡아당기듯 푹푹 빠지는 모래. 이름처 노래하는 모래언덕으로 1 2 3 4 럼 바람이 불 때마다 사르르 하고 모래가 흩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에 섞이는 것은 거친 숨소리. 아무리 걸어 올라도 절반은 다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오니 도통 속도가 붙지 않는다. 발끝에 온 신경을 쏟지 않으면 균형을 잃고 다시 미끄러진다. 정상까지는 평 균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고 했는데, 막상 올라가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끝내 도착한 정상 너머로는 가파른 내리막길, 그리고 지평선까지 쭉 뻗어 있는 사막이 펼쳐졌다. 햇빛에 지나치게 반짝이는 모래알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기도 힘들었지만, 바다의 물결처럼 일렁이는 사막의 구렁 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반쯤 묻혀 있는 뼈는 화석처럼 건조했고, 사람들은 모두 올라온 길이 아닌 그 반대편, 이리 오라는 듯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혹하는 사막을 바라보았다. 몽골 사람들은 고비사막에 유령이 있다고 믿는다. 과거 스마트폰도 없고,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엔 목숨이 위태로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막 근처에서 길을 잃고 사라졌다. 실제 로 달리는 도중 통신이 터지지 않아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니, 주변 지형을 보고 달린다고. 산맥과 언덕, 바 위 등을 보면서 찾아온 고비사막. 매 한 마리가 사막 위를 선회한다. 홍고르 엘스의 높은 모래언덕에서 끝 없이 펼쳐진 사막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없이 벅차오른다.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 그중에 사람은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는 것을, 몽골을 둘러보는 내내 깨닫게 된다.

 

<더 갤러리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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