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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여행, 아이슬란드 대신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떠나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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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ACULAR NIGHT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황홀했던 오로라가 일렁이는 순간, 모두 하나가 되어 “오마이갓!”을 외쳤다.
대자연의 희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인 만큼 만인의 버킷 리스트이기도 한 오로라 관측.
옐로나이프로 떠난다면 충분히 이룰 수 있다.

Editor & Photographer 정예진

 

붉은빛을 띠면서 시작된 오로라의 댄스

옐로나이프Yellowknife로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오로라에 대한 환상을 갖고 부러운 눈빛을 보내거나, 옐로나이프가 어디냐고 묻거나. 누군가에겐 생소한 동네일 옐로나이프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옐로나이프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3시간. 뉴욕에 갈 때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직 한국에서 출발하는 직항로는 없지만, 밴쿠버에서 한 번만 환승하면 되니 도착하는 데까지 큰 어려움도 없는 편이다. 

 

옐로나이프로 떠날 때 여러모로 편리한 에어캐나다. (출처 : 캐나다관광청)

팬데믹 이후 첫 비행으로 이용한 항공사는 에어캐나다. 매일 밴쿠버행 노선을 운영하고 있고, 캐나다에서도 가장 많은 국내 비행 편을 제공해 선택지가 다양했다. 또 다른 항공사를 이용할 때와는 달리 캐나다 환승 시 따로 수하물을 찾을 필요가 없어 더욱 편리했고, 스타얼라이언스의 회원이라 아시아나항공과 마일리지를 공유할 수 있었다. 골드 회원의 경우엔 에어캐나다에서 운영하는 메이플 리프 라운지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으니 프로 여행러인 내가 에어캐나다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강한 초록빛 오로라로 뒤덮인 하늘과 호수

또 다른 이유는 환경이었다. 에어캐나다는 친환경 비행을 위해 노력한다. 2050년까지 모든 노선에서의 온실가스 순 배출 제로화를 목표로 연료 효율성이 높은 항공기를 도입하고 있는데, 실제로 보잉 787 드림라이너는 기존보다 연비가 20% 더 높고, 질소산화물도 50%만 배출한다. 환경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 시대에 에어캐나다는 내가 이번 여행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쩌면 오로라를 보러 가는 자의 양심이기도 했다.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오로라

밤 9시, 밴쿠버에서 옐로나이프로 넘어가는 에어캐나다 비행기에 올랐다. 까만 하늘에 콕콕 박힌 별들과 나란히 날고 있으니 마치 우주선을 탄 것만 같았다. 벌써부터 마주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오로라는 또 어떨까?’ 궁금하고 설렜다. 기대를 품고 도착한 옐로나이프 공항은 생각보다 더 작고 아늑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몇 걸음 걸으면 바로 수하물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이니, 마치 무궁화호를 타고 벌교역에 내린 기분이랄까? 조그마한 컨베이어벨트 뒤로는 커다란 오로라 사진이 걸려 있었다. 마치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로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처럼.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냐고 묻는 건 런던에서 비 구경을 할 수 있냐고 묻는 것과 다름없다. 오로라는 늘 있다. 아무 밤하늘이나 찍어도 항상 희미한 초록빛이 보인다. 다만 우리 눈으로 광고 사진 같은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 오로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선주민. 아담한 옐로나이프 공항. 새벽 간식으로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는 선주민.

이곳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새벽마다 오로라를 기다렸다. 그 시간이 지루하진 않았다. 선주민의 오두막에서 따뜻한 차와 스콘을 먹으며 몸을 녹이고, 같이 북을 치고 노래를 불렀다. 때론 호수에서 잡은 생선을 장작불에 구워 먹으며 오로라를 기다렸다. 하지만 초조했다. 왜 공항에 걸려 있는 사진처럼 하늘이 물들지 않는 건지, 여태 오로라를 선전하는 미디어에 속은 건지, 이번 기사에 쓸 제대로 된 오로라 사진을 찍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오만 가지 생각이들 때쯤 선주민인 스테이시가 이렇게 말했다. “Let the MOTHER NATURE do her works.” 캐나다 선주민들은 오로라를 존중한다. 자연을 재촉하지 않고 그저 기다린다. 오로라가 나타나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아도 우리끼리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라는 애티튜드. 그녀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를 목청껏 외쳤다. 캐나다 선주민이 오로라를 대하는 자세였다.
엄청나게 강한 오로라는 오색 빛깔을 띤다. 새까만 하늘에 언뜻 구름처럼 보이는 한 줄기 빛이 생기면 밤하늘의 쇼가 시작될 징조다. 어느 날 새벽에는 새하얀 빛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어지며 우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점차 초록빛을 띠더니 점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가장 황홀한 순간은 이 빛이 춤을 출 때다. 물감처럼 여러 색이 섞인 채 오로라가 일렁이면, 밤하늘의 커튼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로라의 댄스를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초록빛이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꿈 같은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곧 배터리가 닳아 꺼져버렸고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텅 빈 도로에 앉아 이 순간을 눈에 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주변을 훤히 비출 만큼 밝았던 오로라 커튼은 ‘Spectacular’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충분할 만큼 황홀했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몸을 녹일 수 있는 티피가 줄지은 오로라 빌리지.

캐나다관광청은 옐로나이프에서 3박 이상 머물 경우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98%라 말한다. 이 숫자를 자신 있게 내세우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옐로나이프는 오로라 관측을 위한 최고의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캐나다 내륙 한가운데에 있어 주변에 바다가 없고, 사방 1,000km 이내에 산맥도 없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도 시야가 트이고 급격한 기후 변화를 일으킬 만한 지형적 요소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깨끗한 날씨가 보장된 만큼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도 높으니 나사가 지정한 오로라 성지일 만도 하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이곳에선 365일 중 약 240일간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다. 흔히 오로라를 보려면 영하의 추위를 견뎌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8월 중순에서 9월 말, 11월 중순에서 4월 중순에 가장 잘 볼 수 있다고. 가을과 초봄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정말 오로라가 보고 싶다면 옐로나이프로 떠나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스모어를 만들기 위해 구운 마시멜로.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장 낭만적인 건 투어 가이드의 캐빈에서 아늑한 시간을 보내는 것. 따뜻한 캐빈에 모인 여행객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오로라를 기다린다. 별빛 아래 장작불을 피워 스모어s’more(구운 마시멜로와 초콜릿을 크래커 사이에 넣은 캠핑용 간식)를 만들어 먹는 낭만도 즐길 수 있다. 그러다 오로라가 등장하면 다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사라지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직 오로라 관측이 목적이라면 오로라 빌리지Aurora Village로 향해도 좋다. 선주민의 텐트인 티피Tepee, 360도 돌아가는 침대형 의자, 맥주와 음료를 파는 다이닝 등 오로라 관측을 위한 편의시설이 다양하게 준비돼있다. 오로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하니, 정말 오로라 관광객을 위한 곳이 아닐 수 없다. 

 

미니 버스를 타고 오로라를 찾아 떠나는 오로라 헌팅.

만약 일정이 짧아 여기서도 오로라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최후의 방법이 남았다. 버스를 타고 오로라 출몰 확률이 높은 스폿을 찾아 다니는 오로라 헌팅을 떠나는 것. 늦은 새벽까지 옐로나이프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강한 오로라를 마주하게 된다. 오로라 관측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긴 하나, 오로라를 쫓아다닌다는 게 어째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는 선주민의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바쁘고 여유로운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

가을색으로 물든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 (출처 : 캐나다관광정)


옐로나이프는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그레이트 슬레이브Great Slave 호수를 끼고 있다. 하루는 여기서 카누를 타며 열심히 노를 저었다. 바다처럼 펼쳐진 거대한 호수는 고요했고, 물 위로 부서지는 윤슬은 눈부셨다. 호숫가엔 형형색색의 집들이 줄지어 있는데, 대부분 수상가옥이다. 동동 떠다니는 집에서 나온 허스키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겼고, 몇몇은 주인과 함께 보트를 타고 다녔다. 이 평화로운 풍경을 뒤로하고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독수리들의 사냥. 바람을 가르며 등장한 독수리 두 마리가 양쪽에서 흰 새를 쫓기 시작했다. 이후 어디선가 옛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수상비행기였다. 호숫가 주변  집들을 지나다 보면 커다란 플로트가 달린 수상비행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이 물 위에 이착륙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이 비행기를 타면 노스웨스트 준주(Northwest Territories)의 툰드라 숲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데, 가을엔 노랗게 물든 대자연이 펼쳐진다.

 

(왼쪽부터) 옐로나이프에서 인기 많은 브룩스 비스트로에서 먹은 구운 생선 요리.  피시 피플 부처리에서 맛본 꼬치고기 요리.

한편, 호수에서의 낚시도 빠질 수 없다. 최대 수심이 614m에 달하는 만큼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는 낚시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옐로나이프 사람들은 이곳에서 잡은 물고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다. 대표적인 식당인 브룩스 비스트로Bullock’s Bistro는 피시 앤 칩스로 유명하다. 호수에서 잡은 생선을 튀기거나 구워 감자튀김과 함께 선보이는데, 북극 곤들 매기, 송어, 대구 등 우리나라에선 맛보기 힘든 생선 요리를 먹을 수 있다. 곁들이는 ‘단짠’의 간장 소스도 매력적이다. 마트에서 이 소스를 따로 판매할 만큼 인기가 높다고. 호수에 맞닿아 있는 피시 피플 부처리Fishy People Butchery도 미식가라면 놓칠 수 없는 스폿이다. 생선을 활용한 디시를 코스로 선보이는 곳으로 셰프의 개성이 녹아 있어 창의적인 생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게다가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공간이 아늑함을 더하고, 눈 앞에 드넓은 호수까지 펼쳐지니 그야말로 완벽하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옐로나이프

고속도로에 멈춰 서자 우리를 구경하는 바이슨.

매일 낮 호수에서 시간을 보내다 하루는 야생동물을 찾아 나섰다. <내셔널지오 그래픽> 팬으로서 북쪽 지방의 동물을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북극곰, 늑대, 순록, 사향소 등 많은 야생동물을 기대했지만, 옐로나이프에서 볼 수 있는 건 들소와 여우뿐이었다. 여우는 시내에서도 자주 볼 수 있을 만큼 흔하다. 길고양이처럼 먹을거리를 찾아 요리조리 다니는 모습이 귀여운데, 관심을 주면 얼굴을 덮칠 수도 있다고 해서 멀찍이 지켜봤다.
차를 타고 서쪽 외곽으로 나서면 바이슨ison(들소)도 볼 수 있다. 버팔로로 불리기도 하는 아메리카들소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매킨지 바이슨 보호구역(Mackenzie Bison Sanctuary). 3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니 야생 들소들이 도로를 활보했다. 기다란 갈색 털에 뒤덮인 들소는 2m에 달하는 커다란 덩치로 느릿느릿 움직였다. 들소를 보고 온 날, 공교롭게도 저녁으로 들소 스테이크를 먹었다. 겉모습은 여태 먹었던 비프스테이크와 별다를 게 없었지만 맛은 완전히 달랐다. 지방 함량이 낮아 느끼함이 덜하고 더 진한 육향이 났다.

(왼쪽부터) 카메론 폭포와 이어지는 호수를 감상하는 골든 리트리버. 하이킹을 하다가 만난 아름다운 카메론 폭포.

다음 날에는 동쪽 외곽으로 달렸다. 4번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니 아름다운 하이킹 코스로 소문난 히든 레이크 테리토리얼 공원(Hidden Lake Territorial Park)이 나왔다. 카메론 폭포(Cameron Falls)를 둘러싼 트레일을 따라 걸었는데, 하늘로 치솟은 나무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침엽수림을 보며 30분 정도 걷자 물소리가 들렸다. 세차게 흐르는 폭포의 물줄기는 호수로 이어졌다. 숨도 돌릴 겸 바위에 앉아 호수에 비친 숲을 바라봤다. ‘캐나다’ 하면 떠오르는 그런 그림이었다. 나와 같은 마음인지 트레킹을 따라온 강아지도 바위에 앉아 풍경을 감상했다. 챙겨온 간식을 먹으려던 참, 숲에 사는 새들이 모여들었다. 새들과 빵 부스러기를 나눠 먹으니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마치 우주에 온 듯한 착각이 드는 은하수.

옐로나이프의 자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빛난다. 폭포와 호수, 나무와 숲, 여기 사는 동물들,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와 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 자연을 존중하는 선주민들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 듯 모든 게 빛났다. 마지막 날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꽤 오랜 시간 은하수를 올려다봤다. 이 경이로움을 무한하게 느끼고 싶었다.

<더 갤러리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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