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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데안 서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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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BSERVER

 

런던 디자인 뮤지엄 관장, 데안 서드직과의 만남

 

 

1952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데얀 서드직Deyan Sudjic은 영국의 권위 있는 주간 신문인 <옵저버(The Observer)>에 디자인과 건축 평론가로 수많은 평론 기사를 썼으며, 후에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 세계적 건축 잡지인 <블루프린트Blueprint>를 창간했습니다. 이후 1928년부터 발간돼온 유서 깊은 이탈리아 건축 디자인 잡지 <도무스Domus>의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했죠. 그는글래스 고 영국 도시 건축 디자인 프로그램(Glasgow UK City of Architecture)’의 디렉터(1999),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디렉터(2002)를 역임했으며, 전 세계에 출판된 주요 저서로는 <거대 건축이라는 욕망(The Edifice Complex : The Architecture of Power)> <사물의 언어(The Language of Things)> <도시의 언어(The Language of Cities)> 등이 있습니다. 세계 건축 디자인계에서 존경 받는 이론가로 명망이 높은 그는 2000년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OBE,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건축을 전공했으나 스스로의 표현에 의하면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서야 훌륭한 건축가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러므로 앞으로 어떤 건물도 짓지 않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해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평론가, 큐레이터, 그리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너스레를 떠는 세계의 석학. DDP에서 열리고 있는 <Hello, My Name is Paul Smith> 전시를 기획한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관장으로, 그리고 전시의 주인공이자 평생의 친구인 폴 스미스와 함께 한국의 관람객들을 만나러 온 데얀 서드직은 화려한 이력과 수식이 무색할 만큼 친근하고 유머러스했으며, 동시에 사물과 현상을 꿰뚫어보는 통찰을 보여주었죠. 나지막한 목소리, 높낮이를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 어조, 시니컬한 위트, 때때로 스스로를 낮춰 동시대의 현인과 지식인들의 위대함을 높이는 미덕을 보여준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관장, 데얀 서드직과 나눈 대화.

 

Q 강연 등 여러 가지 일로 이미 수차례 한국에 와본 것으로 안다. 오늘은 당신의 지인이기도 한 폴 스미스 경의 전시를 위해 내한해서 사뭇 감흥이 다를 것 같다. 소감이 어떤가?

A 우선, 존경하는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생전에 디자인한 DDP에서 친구인 폴 스미스의 전시가 열리는 것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이 건물이 지어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어떻게 완성돼 가는지 봐왔는데, 이런 뜻깊은 건축물을 일생에 단 한 번이 아니라 여러 기회를 통해 자주 보게 되니 기쁘고, 이젠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웃음)

 

Q 이번 방한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A 이 전시는 매우 존재감이 크다. 전시의 주인공이자 특별하고 재능 있는 아티스트 인 폴 스미스를 지난 30년간 가까이에서 알고 지낼 수 있었던 게 너무 영광스럽고, 수십 년간 늘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해나가며 내게 끊임없이 놀라움을 안겨준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번 전시를 본다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면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Q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처음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 10여 년 전 어떤 파티에서 폴 스미스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시작된 일이다. 많은 일들이 다 그렇게 시작되지 않나?(웃음) 사실 내가 런던 디자인 뮤지 엄에서 일하기 전에도 폴 스미스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린 적이 있다. 그 당시엔 폴 스미스가 남성복 라인만 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즈니스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따라서 전시 규모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그래서 새로운 규모로 전시를 기획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나는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전시가브리티시 디자인British Design’이라는 주제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폴 스미스는 영국뿐 아니라 동시대 가장 성공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이기에 이 전시가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Q 2013년에 처음 전시를 열었고 그간 많은 도시를 순회했다. 서울은 11번째 전시가 열리는 곳인데, 기존에 비해 어떤 점이 더해지고 또 빠졌는지 그 변화가 궁금하다.

A 지금까지 열린 전시 모두 특정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통해 각각의 도시 환경과 문화, 공간에 어울리게 설계해 개최했다. 패션뿐 아니라 전시 역시 회를 거듭할 수록 최신 유행에 맞춰 바뀌어야 하기에, 각 전시에서는 늘 폴 스미스의 가장 최신 컬렉션들을 선보인다. 따라서 매 전시가 모두 다 새롭고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이번 전시야말로 내가 그동안 본 것 중 가장컬러풀한 전시라고 장담할 수 있다.

 

 

Q 폴 스미스는 당신에게 어떤사람’ ‘디자이너’ ‘친구인가?

A 우리는 많은 면에서 참 다르다. 그는 외향적인 반면 나는 내성적이다. 하지만 폴 스미스는 많은 면에서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며, 나는 그런 그에게 삶에 필요 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나로 하여금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고, 사람 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가르쳐주었다.

 

Q 건축, 디자인, 패션 등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느끼는 듯하다. 특히 패션 같은 경우,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나? 아니면 폴 스미스, 레이 가와쿠보 같은 디자이너들과의 교류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해준 모티브가 되었나?

A 뮤지엄 관장으로서의 역할은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시선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흐름을 지켜봐야 한다. 패션은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임이 분명하다. 동시대의 문화가 함축돼 있는 매체니까. 폴 스미스나 레이 가와쿠보, 이세이 미야케 등 패션 디자이너들과의 교류가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여담인데, 레이 가와쿠보를 소개해준 것도 폴 스미스였다. 어느 날 저녁 도쿄에서 셋이 함께 저녁 식사를 했는데, 레이 가와쿠보는 잘 웃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만남으로 운 좋게도 레이 가와쿠보에 관한 책을 디렉팅할 수 있게 됐고, 6개월 동안 그가 컬렉션을 준비하는 걸 취재할 수 있었다. 텍스타일 공장에 따라가서 울로 천을 짜는 것도 보고, 스튜디오에도 가고, 배우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 가 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되었던 파리 컬렉션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런 순간들을 곁에서 목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계기들로 나는 패션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Q 2016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 건물을 이전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자하 하디드의 전시, 크리스찬 루부탱의 전시, 폴 스미스의 전시 같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거대 전시들을 기획했다. 재직하는 동안 어떤 프로젝트들을 더 할 계획인가?

A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매년 5~6개의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폴 스미스처럼 한 개인에 대한 단독 전시부터 독립된 주제에 대한 포괄적인 전시까지 모두 다뤄야 한다. 현재는 훌륭한 영화 제작자인 스탠리 큐브릭에 관한 전시가 열리고 있고, 곧 개최할 전시는 화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화성으로 이주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웃음) 또 현재 기획 중인건 아주 예전에 나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있는 세계적인 일본 실내 건축가인 시로 쿠라마타에 관한 것이다.

 

Q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관장으로 임명되기 전 <옵저버> <블루 프린트> <도무스> 매거진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글을 쓰고 다수의 책을 집필한 저술가, 이론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우스갯소리로 늘건축가로서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빠르게 저널리스트, 작가로 전향했다고 본인을 소개해왔다. 글쓰기의 어떤 점이 당신을 매혹시켰나?

A 글쓰기야말로 세상에질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자아를 뻔뻔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웃음) 그리고 글을 씀으로써 뭔가에 대해 통찰할 수 있다는 점도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유다. 하지만 신문사에서 일하다 작가로 전환한 시기엔 말 그대로 고통스러웠다. 오랜 시간 <옵저버>의 평론가로 일하면서 1시간 동안 (많아야) 1천 단어 정도를 신속하게 작성하는 데 익숙했는데, 책을 집필하기 위해 10만 단어를 써 내려가는 일은 단거리 경주에서 마라톤으로 종 목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콘텐츠를 선정할지, 또는 과연 이걸 누가 읽기나 할까? 하는 걱정도 종종 들긴 하지만, 그 괴로움을 떨쳐 버리려 노력하고 있다.

 

Q 열독률이 점점 감소해감에 따라 출판 시장의 미래는 아주 암담해 보인다. 사람들이 글을 읽는 데 소요하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인내심도 부족해져 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책을 출판하는 의미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나?

A 글쎄, 우선 종이 잡지는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잡지를 구독하고 사랑하며, 책에서 나는 종이와 잉크 냄새를 그리워한다. 디지털 콘텐츠의 양이 폭발하면서 사람들이 다시 종이 잡지를 그리워하게 된 것 같다. 다시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유행하고, LP가 부활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이코노미스트Economist> <뉴요커(The New Yorker)> 같은 몇몇 매체들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건재함은 분명 사람들이 아직도 통찰력을 주는 긴 문장을 갈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문 쪽은 상황이 조금 다른 것 같긴 하다. 시대가 조금 달라졌다. 그래도 호시절에 신문사에 몸담을 수 있었던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임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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