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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 베르나르 뷔페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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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뷔페展


갤러리아가 추천하는 7월의 전시.



Table et Chaise, 1950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베르나르 뷔페의 자기 희생은 다른 작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에 대한 갈증

인쇄된 종이 책과 웹에서 본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의 그림 속 이미지는 대부분 길쭉하고 뾰족하며 어두웠습니다. 때론 사진처럼 정밀하게 묘사된 그의 그림을 봤을 때의 감정은 음울함에 가까웠고,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없었죠. 하지만 미술관에서 직접 마주한 그의 작품에서 자신의 고통을 그림에 담은 듯한 인상은 모조리 무너졌습니다. 여전히 음울한 잿빛과 날카로운 선묘로 화면 가득 비극적 내용이 가득했지만, 그의 그림이 음울이 아닌 행복에 대한 갈망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공포속에살았다. 그 시절엔 그저먹을 것과 그릴 것만 찾아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뷔페가 생전에 남긴 말처럼, 그는 삭막하고 쓸쓸한 풍경과 메마른 사람들, 그리고 좌절의 초상을 그렸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색상과 스스로 창작해낸 방법으로 그린 캔버스는 많은 이들의 외롭고 지친 감성을 대변하며 공감을 자아냈습니다. 즉, 그의 그림은 음울함 속으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진정한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화가의 면모를 통해 희망을 갈망하는 소통의 창 이었죠. 


Paysages de Paris, La Cité et Notre-Dame, 1956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그리는 행위를 통해 찾은 자아

뷔페의 생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는 좀 더 명확해집니다. 1928년 7월 10일, 파리의 궁핍한 가정에서 태어난 뷔페의 학창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학교에 적응하기보다 그림에만 몰두하는 소년이었죠. 당시 파리의 상황 또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가 리세 카르노Lycée Carnot 중등학교에 입학했 던 시기인 1940년 6월 13일에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 프랑스 북부를 점령 했습니다. 혼란한 시기에 뷔페가 선택한건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방과 후에는 야간 학교에 다니며 데생 수업을 들을만큼 열성적 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열정이 문제가 되어 학교에서 퇴학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가 학업을 소홀히 함은 물론 학교의 교육 방식을 비판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뷔페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떤 방해도 없이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뷔페의 삶은 예술의 갈망 속에 완벽하게 종속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뷔페의 삶도 평탄치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집은 가난했으며, 아버지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죠. 유일한 안식처였던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그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잘 다니던 학교까지 퇴학당했으니 뷔페는 고통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뷔페는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끝없이 갈구했습니다. 그의 눈과 입, 그리고 마음은 그림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가 프랑스 제일의 미술 고등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 합격한 것도, 또한 1948년 19세의 어린 나이에 미술계 에서 인정하는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당시 추상주의에 사로잡힌 미술계에서 선보이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의 그림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밝거나 행복할 리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이었죠. “모르겠어요... 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 뷔페가 생전에 남긴, 자신이 어떤 존재로 남길 바라냐는 인터뷰에서 답한 내용입니다. 그의 그림은 분명 내면의 고통과 외로움의 표현일 테지만, 한편으론 광대처럼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L'Odyssée - Les Sirènes, 1993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번뇌 속에서 깨어난 활력

뷔페 작품 속의 인물은 모두 며칠째 굶은 사람처럼 메말라 있습니다. 그것이 괴팍해 보이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가 그린 아름다운 풍경마저도  쓸쓸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정원과 궁전, 하늘을 뚫을 듯한 마천루도 어딘가 모르게 공허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1958년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지성과 감성의 문인 프랑수아즈 사강 등과 함께 <뉴욕타임스>의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젊은 재능 5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코네상스 데자르 매 거진Connaissance des Arts Magazine>에선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훈장 중 가장 명예롭다는 레지옹 도뇌르Lgion d’Honour 훈장을 두 번이나 수여받은 프랑스 20세기 최고이자 마지막 구상 회화작가입니다. 추상회화를 지향하는 시대의 흐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유지하며 그 어떤 혹평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은 진정한 화가였습니다.


Annabel en Robe du Soir, 1960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베르나르 뷔페 : 나는 광대다_ 천재의 캔버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는 9월 15일까지 열리는 <베르나르 뷔페 : 나는 광대다_ 천재의 캔버스>전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유지하며 그 어떤 혹평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았던 뷔페의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입니다. 약 50년간 이어진 그의 시대별 대표 유화 작품 92점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죠. 뷔페가 그림을 시작한 1940년대 후반,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1950년대의 대표적 정 물화와 인물 초상화, 그리고 평생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아나벨 뷔페와 서커스 테마가 등장하는 1960년대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 중반에선 거친 직선으로 표현한, 우울함이 깃든 건축 풍경화와 강렬한 색상이 특징인 인물화, 그리고 <오디세이> 같은 문학 작품을 소재로 한 대작들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부분은 1990년대 작품들로 구성되었는데, 뷔페가 파킨슨병으로 더 이상 작업할 수 없게 되자 1999년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린 강렬한 색상의 광대시리즈와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그 어떤 전시보다 우울함이 깃든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슬픔이 아니죠. 아름다움을 갈망한 천재 화가의 절규를 몸소 체험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은 문구를 소개합니다. 뷔페의 영원한 사랑이자 뮤즈, 동반자였던 아나벨 뷔페의 말이죠. “나는 베르나르가 창조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욕구를 소진하고자 견뎌야 했던 작업의 강도를 이해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영감은 무의식에서 자라났고, 마치 자신의 한계에 이르고 나서야 느끼는 행복처럼 그의 상처들마저 활기를 띠고있다. (중략) 내가 잘한 점이 있다면 베르나르에게 그림은 운명 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가 그림과 마주하고 있을 때 내가 낄자리를 만들려 하지 않아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writer 서재우(<MAGAZINE B>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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