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의 진짜 얼굴
올 여름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에서 만날 수 있는 프리다 칼로의 진짜 얼굴.
(좌) Frida Kahlo in Blue Satin Blouse, 1939, Photograph by Nickolas Muray © Nickolas Muray Photo Archives
(우) Prosthetic leg with leather boot. Appliquéd silk with embroidered Chinese motifs. Photograph Javier Hinojosa. Museo Frida Kahlo.©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Archives, Banco de México, Fiduciary of the Trust of the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Museums.
프리다 칼로Frida Kahlo라는 이름에는 평화가 담겨 있습니다. 유대계 독일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름 ‘프리다Frida’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기 때문. 그는 자신의 딸이 평화로운 삶을 살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칼로의 인생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칼로는 6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를 절었으며, 의사를 꿈꾸던 18세 때는 하굣길에 탑승한 버스와 전차가 부딪히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죠. 이로 인해 대퇴골과 갈비뼈가 부러졌고, 골반은 세 군데, 왼쪽 다리는 열한 군데가 골절됐습니다. 오른쪽 발은 아예 으스러졌고요. 칼로는 당시의 사고를 회상하며 ‘다쳤다’가 아닌, ‘부서졌다’고 표현하곤 했죠. 칼로는 뼈를 맞추는 수술만 32번 해야 했고, 고통을 견뎌내며 9개월간 온몸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사들은 ‘완치돼서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진 못했지만, 그녀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두 손으로 그림을 그린 것.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칼로를 위해 부모는 지붕 밑면에 전신 거울을 설치한 캐노피 침대와 누워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젤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화가로서의 시작점이었죠. 이후 그녀는 강철 코르셋과 목발에 의지해 살았지만,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표현하며 고통을 극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Frida Kahlo with Olmec Figurine, 1939, Photograph by Nickolas Muray © Nickolas Muray Photo Archives
고통의 굴레에서 피어난 꽃
더 끔찍한 고통이 있을까 싶었던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사랑의 아픔. 1910년 멕시코 혁명 이후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자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 또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걸리는 그림이 아닌, 어려운 정세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대중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 즉, ‘민중의 미학’이 멕시코 전역에 퍼져 당시 칼로 또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던 때였죠. 민중을 대하는 ‘멕시코 미술가’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기에, 그녀가 멕시코 미술의 르네상스를 이끈 벽화 예술 운동의 선구자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를 만나 사랑에 빠진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미 멕시코 미술계의 거장이었던 리베라는 칼로에게 존경과 사랑의 감정을 알게 해준 정신적 뮤즈로 그녀의 미술 인생을 성장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칼로의 삶을 처절하게 외롭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칼로가 아닌 다른 여성을 품에 더 자주 안았을 만큼 여성 편력이 심했고, 칼로는 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내 인생에 두 번의 대형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다.” 칼로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평생을 외롭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죠. 누구보다 앞장서 자신의 목소리를 냈으며, 자신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그림엔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동시에 슬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평화’라는 이름과 상반되게 흘러간 그녀의 삶처럼, 결코 한 단어로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평가할 순 없죠.
(좌) Guatemalan Cotton Coat Worn with Mazatec Huipil and Plain Floor-length Skirt Museo Frida Kahlo © Diego Rivera and Frida Kahlo Archives, Banco de México, Fiduciary of the Trust of the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Museums.
(오른쪽 위) Necklace of Silver, Enamel, Turquoise and Coral with Hinged Compartment, Made by Matilde Poulat, Mexico City, c.1950. Museo Frida Kahlo. Photograph Javier Hinojosa. ©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Archives, Banco de México, Fiduciary of the Trust of the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Museums.
(오른쪽 아래) Revlon Compact and Powderpuff with Blusher in ‘Clear Red’ and Revlon Lipstick in ‘Everything’s Rosy’; Emery Boards and Eyebrow Pencil in ‘Ebony’. Before 1954. Photograph Javier Hinojosa. ©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Archives, Banco de México, Fiduciary of the Trust of the Diego Riviera and Frida Kahlo Museums.
프리다 칼로의 삶과 마주하다
프리다 칼로는 1930년대 후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o,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등 당시 유럽 미술계 거장들이 그녀를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하면서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칼로는 자신의 그림이 초현실주의로 표현하는 유럽의 모더니즘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닌 자기 자신에서 비롯됐다고 말하죠. 고향인 멕시코와 그녀를 아이코닉하게 만들어준 남미 전통 복식 스타일의 드레스와 액세서리, 그리고 몸의 일부나 다름없었던 철제 코르셋과 의족 역시 그녀의 삶을 비추는 거울인 셈. 여기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외로움이 더해져 남들은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독창적인 시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을 다룬 소설과 영화 등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것 또한 그녀의 그림을 단지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
그간 우리는 수없이 많은 프리다 칼로의 전시를 통해 그녀의 그림을 봐왔지만, 그녀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는 사실. 오는 6월 16일부터 11월 4일까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ictoria & Albert Museum에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이 아닌,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는 <Frida Kahlo : Making Her Self up>전을 개최합니다. 이 전시에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과 더불어 그녀가 실제로 즐겨 착용했던 옷과 액세서리, 소장하고 있던 멕시코 전통 의상 등 그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오브제들을 전시하죠. 무엇보다 멕시코 혁명 이후 문화와 멕시코 원주민의 예술과 전통에 대한 칼로의 관심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칼로가 심취한 공산주의 사상과 그녀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게 된 배경 등을 자세히 훑어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우리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이 아니라 그녀가 그토록 그려냈던 스스로의 내면, 그리고 고통 속에 피어난 그녀의 진실한 삶을 목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writer 서재우(<MAGAZINE B>에디터)
LEGEND OF DESIGN : LUNAPARK (0) | 2018.08.03 |
---|---|
STEFANO GIOVANNONI (0) | 2018.07.17 |
INTERVIEW: 류태환 (0) | 2018.05.24 |
INTERVIEW : 송자인 (1) | 2018.05.08 |
시칠리아, 느리고 달콤한 시간을 감각하다 (0) | 2018.04.13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