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기 좋은 계절, 가을이 왔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기 쉬웠던 여유, 소설을 읽으며 제대로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와인 한잔을 즐기며 말이죠. 세련된 취향을 드러내는 상징부터 인물의 욕망을 이끄는 서사의 핵심 요소까지. 소설 속에 등장했던 다양한 와인을 소개합니다. 올 가을 소설 한 줄 읽고 와인 한 모금 마시며 가을의 낭만을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을의 정취와 소설의 낭만이 더해져 더욱 달콤한 한 모금이 될거예요.  여기 당신의 순간을 멋지게 만들어 줄 추천 와인과 소설이 있습니다.

 

 

가을 추천 소설 그리고 와인

클라우디베이 소비뇽 블랑 &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피처>

 

게리에 대한 내 동정심은 조리대 위에 놓인 와인 글라스 두 개를 보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와인 글라스 중 하나엔 아내가 늘 바르는 분홍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었다. (중략)

“이 와인 마셔본 적 있어요?”
“집사람이 전에 가져온 적이 있죠.”
게리는 와인 코르크를 따면서 다시 슬며시 미소 지었다.
“부인의 취향이 좋군요. 소비뇽 블랑이라면 클라우디 베이가 세계 최고죠.”
“집사람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빅 피처>는 충동적인 살인을 저질러 자신을 버리고 타인이 되어 진정 원하던 삶을 살게 되는 아이러니컬한 남자의 삶을 다룬 베스트셀러입니다. 스크린으로도 옮겨졌던 이 작품엔 아내의 불륜의 증거이자 살인 도구로 ‘클라우디베이 소비뇽 블랑’이 등장하죠.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클라우디 베이는 1985년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에 최초로 설립한 5개 와이너리 중 하나랍니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 와인은 서울 G20 정상회의 때 특별 만찬 와인으로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뉴질랜드 와인 특유의 깔끔한 맛과 함께 균형 잡힌 구조와 강한 산도, 그리고 풍성한 과일 향이 특징으로 청량한 와인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아비뇨네지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
무라카미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

 

그날 밤 나는 케이시가 마련해놓은 몬테풀치아노의 레드 와인을 따서 크리스털 와인 잔에 따라 몇 잔을 마시고, 거실 소파에 앉아 막 사가지고 온 신간 소설을 읽었다. 케이시가 권한 것이 무색하지 않게 여간 맛이 좋은 와인이 아니었다. 냉장고에서 브리 치즈를 꺼내 크래커와 같이 사분의 일쯤 먹었다. 그사이 주위는 조용해졌다.

 

애주가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엔 와인이 단골 소재로 등장해요. 현대인의 고독과 상실감을 다룬 단편 소설집 <렉싱턴의 유령>도 그중 하나죠. 표제작인 ‘렉싱턴의 유령’은 미국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 케이시의 부탁으로 그녀의 대저택에 혼자 며칠간 머물며 유령을 만나는 한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첫날 밤, 대저택에서 작가를 위해 준비한 와인은 몬테풀치아노입니다. 이탈리아엔 두 가지 몬테풀치아노가 있는데, 하나는 이탈리아 와인 명산지인 토스카나 지방의 지역 이름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포도 품종을 의미합니다. 몬테풀치아노에서도 고급스럽고 섬세한 양조로 손꼽히는 와인 명가 아비뇨네지는 16세기부터 와인을 생산했어요. ‘아비뇨네지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는 아비뇨네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대표 와인입니다. 최소 40년 수령의 토종 품종인 산지오베제로 만든 만큼 깊은 향과 맛을 간직한 것이 특징. 신선하고 강렬한 과실 향과 풋풋한 풀 내음, 스파이스 향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입안을 감싸는 향긋한 여운이 매력적이랍니다.

 

 

쿠지노 마쿨 & 발디비 에소 스파클링 모스카토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어느 토요일 밤, 마리오는 꿈 같은 사랑이 깨져버릴까봐 겁을 내며 청혼을 하러 주점에 나타났다. (중략) 그러나 과부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라서 발디비에소 샴페인을 터뜨려 세 개의 잔에 거품이 넘치도록 따르고는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마리오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두려워하던 총알 대신 “엎질러진 물이지”라는 말을 내뱉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게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시인이자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와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의 우편 배달부 마리오의 우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 초반에 마리오가 첫 월급으로 아버지를 위한 와인을 구입하는데, 이때 등장하는 것이 실제로 네루다가 즐겨 마셨던 ‘쿠지노 마쿨’입니다. 잉카어로 ‘오른팔’을 의미하는 쿠지노 마쿨은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칠레의 국보급 와이너리로 꼽히죠. 2004년 칠레 대통령이 각국 정상들에게 칠레 발전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선물했을 정도니까요. 또 다른 와인도 눈길을 끌고 있어요. 장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리오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소녀 베아트리스와의 결혼을 감행하는데, 장모가 결혼을 승락하는 의미로 발디비에소 샴페인을 대접합니다. 칠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파클링 와인인 ‘발디비 에소 스파클링 모스카토’는 라벨의 선명한 ‘V’자 덕분에 행복과 성공을 기원하는 와인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돈나푸가타의 탄크레디 & 주세페 토마시의 <레오파드>


곧 그는 소년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매사가 울적했던 공작은, 넘치는 생명력과 경박한 듯 보이면서도 그 이면에 진지성을 감추고 있는 소년을 보면서 자유롭고 활기찬 기상을 발견했다. 공작 스스로는 분명하게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장남인 파오로가 아니라 탄크레디가 자신의 진짜 장자, 후계자이길 바라고 있었다.

 

시칠리아의 대표 와이너리인 돈나푸가타에선 매혹적인 라벨과 설화 속 인물의 이름을 활용해 스토리가 깃든 와인을 선보인답니다. ‘돈나푸가타의 탄크레디’는 이탈리아 국민작가 주세페 토마시의 장편소설 <레오파드>와 196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동명 영화의 남자 주인공 이름에서 가져왔어요. 이 와인은 네로 다볼라와 대표적인 레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을 블렌딩해 세련된 와인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죠. 균형 잡힌 풍미와 감미로운 향이 오랜 여운을 선사하는 이 와인은 소설 속 탄크레디의 모습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역사의 혼돈 속에서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직감한 공작 파브리지오는 자신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늘 고독해요. 이런 그와 대조되는 조카 탄크레디는 출세를 향한 야망과 열정이 가득한 매력적인 젊은이 입니다. 탄크레디의 정혼녀인 안젤리카는 그를 잊지 못하는 공작의 딸 콘체타에게 거부하기 힘든 탄크레디의 매력에 대해 “마르살라 와인을 마신 다음에 물을 마시는 것 같을 거야”라며 그가 너무 매력적이라 다른 어떤 남자를 만나도 물처럼 심심할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editor 장인지

Photographer 이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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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갤러리아 G - 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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