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01월 25일 생
스무 살 앤디앤뎁을 키운 것의 8할은 도전과 집중,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의다
앤디앤뎁의 탄생은 밀레니엄 시대의 개막처럼 드라마틱했습니다. 시기마저도 드라마틱하죠. 하필 나라 살림이 가장 어려웠던 1999년에 론칭했는데요. 앤디앤뎁의 아이덴티티는 위기의 시대에 더욱 반짝였습니다. ‘하이엔드’라는, 기존의 한국 패션 시장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카테고리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만들었고, 앤디앤뎁 고유의 아이덴티티인 ‘로맨틱 미니멀리즘’으로 동시대를 리드하는 가장 반짝이는 브랜드로 빠르게 자리 잡았죠.
김석원과 윤원정은 지난 20년을 ‘일희일비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라고 표현합니다. 앤디앤뎁에게 오로지 환희의 순간만이 존재하지 않았음은 물론. 한창 승승장구하던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세컨드 브랜드인 뎁Debb을 론칭하려다 급변한 상황으로 계획이 무산되어 투자했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죠. 브랜드의 근간이 흔들리기까지 한 순간이었습니다. 디자인의 오리지널리티만 그대로 두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가격대부터 유통 채널까지 완전히 리뉴얼해 오픈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 대거 진출한 해외 브랜드들과의 경쟁, 오프라인 시장의 축소와 온라인 위주의 유통시장 변화 등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시장의 흐름에 대응하며 지난 20년을 숨가쁘게 달려왔죠.
오래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버리거나, 살아 있되 살아 있지 않은 영혼 없는 브랜드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앤디앤뎁을 바라볼 땐 향수와 선망이 교차합니다. 1999년을 기억하며 향수를, 2019의 앤디앤뎁을 지켜보며 선망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이런 감정들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의 변화에 맞춰가면서도 타고난 모습만큼은 오롯이 지켜온 두 사람의 뚝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가 싶습니다.
Q 2019년은 앤디앤뎁의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앤디앤뎁 안에서 뎁과 콜라보토리라는 세컨드 브랜드가 탄생했고, 온라인과 홈쇼핑 진출, 파라다이스시티와 아모레퍼시픽 같은 다양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 등 지난 20년을 요약하면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거 같아요.
(윤원정 이하 윤) 도전 의식이 높아서라기보단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많았으므로 ‘도전’보다는 ‘생존’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웃음) 물론, 작은 회사로 시작했기에 환경의 변화에 늘 빠르게 대응했고,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그걸 덥석 물고 어떻게든 만들어가는 투지는 평균 이상인 것 같습니다.
(김석원 이하 김) 패션이라는 산업에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유효 기간이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점도 늘 도전에 직면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곤 합니다. 옷이라는 건 다른 제조품들처럼 만들면 1, 2년간 판매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초기엔 현실에 안주하고 매너리즘에 빠져 큰코다치기도 했는데, 이번 시즌에 옷을 많이 팔았다 해도 다음 시즌엔 절대 보장할 수 없는 6개월 주기의 성공이기에 절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6개월 사이클에서 다양한 유통 변화에 대응하며 20년을 이끌어오다 보니 밖에서 보기에는 그 20년이 도전의 연속으로 비쳐졌을 것 같네요.
Q 사람으로 치면 20년이라는 세월은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는 기간정도 일거 같은데요. 감회가 어떤지 궁금해요.
윤 실제로 큰아이가 1999년 7월에 태어나 올해 만 스무 살이 됐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뜨면 그날그날 닥친 일들에 대응하며 사느라 세월이나 감회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바빴는데, 아이가 커서 대학에 가고 그런 걸 보니 앤디앤뎁의 20주년이 더욱 피부에 와 닿네요.
김 굉장히 다양한 감정이 듭니다. 감회도 새롭지만, 한편으론 이상적으로 생각해왔던 회사 모습에 더욱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부분도 있죠. ‘더 크게 키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만큼 커진 앤디앤뎁에 대한 큰 책임도 느낍니다.
Q 지난 20년 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환희에 찼던 순간들이 있을까요?
김 앤디앤뎁을 오픈한 뒤 최초로 지인이 아닌 일반 손님이 들어와서 우리 옷을 사가셨을 때? 그 기쁨이 어땠는지 기억하면 아직도 이렇게 웃음이 납니다.
윤 정확히 1월 25일에 숍을 열고 그해 3월 <보그Vogue>에 기사가 났어요. 그랬더니 3월부터 잡지를 보고 고객들이 방문 구매를 하기 시작했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디자이너는 우리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볼 때 가장 기쁜 것 같아요. 론칭 초기에 하루는 청담동의 가장 핫한 카페에 미팅하러 갔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성 세 분 모두 앤디앤뎁의 베스트 아이템들을 입고 있었어요. 너무 흐뭇해서 계속 그분들을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그리고 뉴욕에서 처음 컬렉션을 개최했을 때도 기쁜 순간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Q 20년의 세월이 가르쳐준 교훈들도 있을 것 같아요.
김 & 윤 매 순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새로운 일들을 맞닥뜨려가며 도전하니까 매번 배움이 있는 것이죠. 20년을 운영해왔다 해도 다른 스테이지에 올라가면 또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스테이지들을 지나오며 버리는 법도 배웠는데, 디자이너가 가질 수 있는 자만심이 바로 그것이죠. 예전에는 패션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트렌드나 정보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들이 더 많았기에 자만심이 통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보 독점이 불가능한 시대라 대중들에게서 올라오는 핫하고 재미있는 정보가 더욱 힘 있는 상황이예요. 우리도 그런 현상을 인지한 순간부터 ‘디자이너의 자만심’이 우리를 망친다는 경각심을 늘 잊지 않으려 합니다.
Q 앤디앤뎁 안팎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라다이스시티 내 부티크 호텔과 스파, 클럽 직원들의 유니폼을 디자인한다는 소식도 들었고요. 또 어떤 작업들을 동시 진행하고 있나요?
김 생각해보니 우리가 안주하는 스타일은 못 되는 것 같아요. 5년간 듀퐁Dupont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있었고, 윤원정 이사는 유베이스라는 큰 규모의 의류 제조 수출 회사의 디자인 본부장으로 겸직을 하게 됐습니다. 뎁과 콜라보토리를 어떻게 더 키울 수 있을지, 큰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었던 목마름이 있었는데, 이번에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Q 윤원정 이사는 전문 셰프 뺨치는 요리 실력으로, 김석원 대표는 소문난 미식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김석원 대표는 미식을 즐기는 걸 넘어서 라면, 만두 등 식료품의 브랜딩에까지 손을 뻗쳐 화제가 됐죠. 다른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결성한 ‘옥토끼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인데, 이는 삶의 또 다른 기쁨일 것 같아요.
김 큰 기쁨, 큰 재미입니다. 점점 나이가 들고 기성세대라는 프레임에 갇혀 사고방식이 정형화됨을 느낄 때 이 프로젝트가 큰 기쁨을 주었죠. 새로운 이슈로 다양한 세대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고, 그걸 통해 다양한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일이 커져서 곧 오뚜기랑 컬래버레이션하는 라인업들이 출시될 예정이고, 종로에 신개념의 편의점을 오픈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편의점 이름은 ‘고잉 메리Going Mary’. 우리가 만든 제품,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들을 넣은 프리미엄 편의점이죠. 혼밥을 즐기는 분, 혼술을 즐기는 분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그 공간을 통해 실험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Q 한편, 윤원정 이사는 올해 백 라인을 새롭게 론칭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윤 앤디앤뎁을 해오며 거의 20년 동안 염원해온 백 라인을 올가을 드디어 론칭할 예정입니다.. 거창하진 않지만 20주년의 의미가 좋으니까 가을에 출시할 생각으로 진중하게 작업해 나가고 있어요. 앤디앤뎁의 F/W 컬렉션을 조금 늦게 열어 가방까지 함께 쇼케이스할 생각이죠.
Q 매일매일이 정말 치열할 수밖에 없는 스케줄인 것 같아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고 있나요?
김 학창 시절에 했던 테니스를 다시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습니다. 운동에 빠지면 어느 정도 경지까지 올라가는 데 집착하는 편이죠.
윤 김 대표는 레슨도 하고 게임도 하지만, 계속 유튜브나 유명 선수의 경기를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집에서도 라켓을 휘두른답니다.(웃음)
김 내 성향이 그대로 나오는 것 같아요. 몸을 쓰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실제로 구현해 경기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희열을 느끼죠. 요즘 간헐적 단식으로 큰 효과를 보고 있는데, 이런 것도 오랫동안 원리와 결과에 대한 이해를 마치고 시작하지, 무작정 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윤 저는 요리를 하고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곤해요. 김 대표와 달리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하죠.(웃음) 먹는 것에 비하면 정말 날씬하다고 봐야 할 정도로 많이 먹고 많이 만들어봅니다. 손으로 뭘 만들어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타입이죠. 그때만큼은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니까. 특히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데, 한 가지 요리도 다양한 사람들의 레시피를 수집해 필요한 점만 골라 나만의 레시피로 완성하는 것을 즐기죠. 여러 개의 레시피를 빠르게 보고 순간적으로 필요한 것을 골라 내게 맞는 딱 하나를 만들어내는 식입니다.
Q 취미에 접근하고 풀어내는 방식이 서로 너무 다른게 아닐까 싶은데요. 성향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윤 맞아요. 저는 일할 때 순간적인 집중, 빠른 판단으로 치고 나가는 걸 잘하고, 김 대표는 천천히 이해한 다음 계획해서 실행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놓고 리뷰하며 비즈니스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단계를 만들어 나가는 걸 좋아하죠. 처음엔 우리도 그 성향 차이를 몰라서 많이 싸웠구요. (웃음)
Q 부부가 직장 동료로서도 서로를 대해야 하는 상황이 흔하지는 않은데요. 일로도 부딪혀야 하니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윤 오랜 시간 친구로 알고 지냈고, 연애도 했고, 결혼 생활도 오래했지만, 비즈니스를 함께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보통의 부부들은 아이를 낳고 나서 서로의 가치관이 다른 것을 처음 느끼게 되는데, 일을 함께하게 되면 처리 방법이나 사고 체계가 달라 많이 싸울 수밖에 없어요. 오래 알고 지내다 보니 부부 생활에서는 거의 다툼이 없지만, 일하는 관점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나 흐름이 결정되니 초창기에 치열하게 싸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회사 일로 부딪히고 나면 상대적으로 집안일이나 아이 육아 문제로는 사사건건 충돌하지 않게 되는 좋은 점도 있더라고요. 더 주장하는 사람에게 맞춰주고 믿고 따라가죠.
Q 주변을 봐도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부부들이 더 많이 싸우는 것 같더라구요.(웃음)
김 당연히 갈등이 있지만 오래 지나면 언젠가 현명해지는 시기가 오죠. 서로 다름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 서로에게 너그러워지더라구요. 물론 어느 정도 단계가 지나야 하고,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갑자기 해결되는 그런 현명한 방법은 없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사람들의 인내심이 부족해지는 것 같아요.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로 풀어보려고 하는 그런 인내심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받곤해요.
Q 앤디앤뎁이 20주년을 지나 40주년, 60주년을 이어가는 한국의 자랑스런 패션 하우스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앞으로 20년 후, 40주년의 청사진은 어떤 모습인가요?
김 사실 이런 질문이 가장 두렵더라구요. 왜냐하면 요즘처럼 사회 흐름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퇴화하지 않는 동시에 브랜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게 제일 힘든 일이기 때문이죠. 똑같은 사람들에게 20년 후에도 똑같이 사랑받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고. 우리는 40년, 60년 후에도 변하거나 퇴화되지 않고 아름다운 앤디앤뎁의 모습 그대로를 지킬 수 있길 바랍니다.
윤 저 말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연륜이 모자랄 때 같으면 ‘꼭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겠지만, 지금은 그 말의 무게감을 너무 잘 알기에 조심스러운게 사실이에요. 앤디앤뎁의 이미지를 굳건하게 하는 데 거의 20년을 다 소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아직도 더 알려야 할 부분이 많죠. 또 다른 20년은 앤디앤뎁의 테이스트로 시도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 다양한 제품군으로 소통하기 위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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