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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자를 위한 팬츠 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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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사회의 거울입니다. 젠더리스와 페미니즘이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떠오른 지금, 런웨이 위 팬츠 슈트의 호황이 결코 우연은 아니란 뜻.

 


 

작년 11, 세계의 시선이 미국 대선에 쏠렸습니다. 대선일을 앞두고 벌어진 지지자들의 패션 대결로도 큰 화제가 되었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자들은 3 TV 토론 이후 페이스북에팬츠 슈트 네이션Pantsuit Nation’을 만들었는데, 무려 1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페이지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여성인 클린턴의 역사적인 대권 도전을 기리는 뜻에서 그녀를 상징하는 팬츠 슈트를 입고 투표하는 캠페인을 펼쳤죠. 미국 팝 스타 비욘세 역시 이 캠페인에 동참하며 클린턴을 지지하는 의미로 도트 무늬 팬츠 슈트를 입고 콘서트장에 등장했습니다. 팬츠 슈트 네이션을 개설한 리비 체임벌린Libby Chamberlain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이 바지 정장을 입는 것은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도전과 투쟁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첫 팬츠 슈트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20세기 초 미국과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이 있습니다. 이 운동에 참여했던 서프러제트Suffragette(여성 참정권 운동가) 사이에서 신체 활동에 제약이 많은 스커트를 대체할 만한 옷으로 남성 슈트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죠. 마침내 1932, 프랑스 디자이너 마르셀 로샤스Marcel Rochas가 처음으로 여성용 팬츠 슈트를 선보였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팬츠 슈트는 여성복의 범주에 들어섰을 뿐, 소수만 입는 사회 반항적인 옷에 불과했습니다.

  

팬츠 슈트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전미 여성 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가 창립된 1960년대에 하이패션이 슈트에 관심을 보이며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1966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선보인 르 스모킹Le Smoking . 남성의 턱시도 정장에서 영감을 얻은 이 룩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프랑스의 판탈롱Pantalon 법에 의해 공공장소에서 바지 착용이 금지되었던 여성이 어디서나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적 성격을 지닙니다. 여자들의 재정적 자유가 생긴 1990년대에는 미니멀리즘이 트렌드로 떠오르며 헬무트 랭과 질 샌더 스타일의 늘씬한 팬츠 슈트가 사랑 받았습니다. 20세기 말에는 직장에서의 권위와 존경을 상징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팬츠 슈트를 입게 되었죠.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여자들의 목소리는 더 강하고 단호해졌습니다. 이젠 남녀 평등을 넘어 사람으로서의 권리, 여성의 힘주체적인 여성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케Angela Merke 총리는 공식 석상에선 스리 버튼 재킷과 정장 팬츠를 시그너처 룩으로 입으며, 지난 9월에 방한한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도 레드 팬츠 슈트에 나비 무늬 스카프를 매치한 파워 드레싱으로 대중에게 주목 받았습니다.

 

패션 저널리스트인 수지 멘키스Suzy Menkes <보그> 이탈리아에서남녀가 서로의 옷장을 공유하고, 옷으로 상대를 평가하지 않는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세대는 더 이상 책상 앞에서 일하기 위한 옷을 입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선택지가 많은 젠더리스 시대에 하필 팬츠 슈트가 트렌드 전면에 대두됐다는 것은 여성들이 사회현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개진하고 있음을 시사하죠. 미국 대선과 맞물려 확연히 드러난 페미니스트 사상은 디올의 2017 S/S 컬렉션에서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와 같은 슬로건이 들어간 레터링 티셔츠로 표출되었고, 이번 시즌엔 파워 우먼을 위한 팬츠 슈트로 더 견고해졌습니다. 1990년대의 미니멀 슈트(셀린느, 빅토리아 베컴, 캘빈 클라인 컬렉션)를 큰 축으로 막스마라의 1980년대풍 오버사이즈 슈트, 르 스모킹 룩을 재현한 생 로랑의 턱시도 슈트, 초기 팬츠 슈트를 연상시키는 워킹 웨어 스타일의 디올 슈트까지, 팬츠 슈트만 모아 연대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니, 디자이너들이 페미니즘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은 언제나 정치적 기류와 이어져 있죠. 지금은 타인의 관심을 구걸하거나 과시할 때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무장하고 보호하기 위한 전투복이 필요하죠.” 조셉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의 말처럼, 이제 여자들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팬츠 슈트를 입습니다. 극단의 사상이라 여겨졌던 페미니즘을 패션과 아트, 문화 콘텐츠로 평화롭고 세련되게 풀어간다는 점에서여자가 미래다라는 문구가 더욱 희망적으로 다가오네요.

 


editor 김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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