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UTTI-FRUTTI
남성복에선 그레이와 네이비, 블랙 컬러가 늘 기본값이지만 ‘안전한’ 스타일링을 위한 고루한 컬러 팔레트에 디자이너들도 싫증이난 걸까? 이번 시즌엔 유난히 알록달록한 의상이 밤거리 네온사인처럼 런웨이를 환하게 밝혔다. 멀티컬러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한 디자이너들은 단순히 비비드 컬러만 사용하거나 원 컬러 스타일링에 그치지 않았다. 1960년대 사이키델릭에서 영향을 받은 독특한 패턴과 네온 그린부터 형광 핑크, 일렉트릭 블루에 이르기까지 자극적인 컬러 플레이로 그들의 크리에이티브한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대표적인 컬렉션은 루이 비통. 컬러 스프레이를 마구 뿌려놓은 듯한 후디 아우터와 기다란 트렁크 백, 여기에 쨍한 블루 팬츠가 어우러져 마치 팝아트를 보는 것 같았다. 돌체 앤 가바나는 홀리데이 시즌에나 볼 법한 화려한 조명 장식을 연상시키는 프린트 룩에 여러 개의 롱 비즈 네크리스를 레이어드해 Z세대를 겨냥한 힙한 감성을 마음껏 표현했다. 자칫 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자유롭고 낙관적인 서머 룩으로 이만한 스타일도 없을 듯하다.
2. MY UNIVERSITY
일명 ‘과잠’을 입고 대학 캠퍼스를 누비던 그때처럼 올봄엔 패션 하우스 소속이라도 된 양 바시티Varsity 재킷을 입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시즌 런웨이엔 빈티지 아이비리그 스웨터부터 페니 슈즈까지 프레피 룩에 속하는 여러 아이템이 등장했는데, 그중에서도 파리와 밀라노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클래식한 바시티 재킷을 스포티하게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디올과 모스키노, 루이 비통은 슬림한 베이스볼 재킷에 각각의 하우스를 상징하는 영문자를 넣었으며, 돌체 앤 가바나는 신문을 마구 찢어붙인 듯한 콜라주 프린트를 접목시켜 스트리트 무드를 강조했다.
3. BEYOND THE COAT
코트까지 걸치기엔 덥고, 티셔츠만 입기엔 추운 간절기, 이때 제 역할을 하는 일당백 아이템이 카디건이다. 라운지웨어부터 외출복에 이르기까지 활용도가 높고, 니트의 특성상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해 누구나 부담 없이 매치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번 시즌엔 헤비한 스타일도 많이 출시되는 추세라 보온성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셔츠 위에 걸치는 클래식한 디자인도 좋지만, 스웨트 팬츠 위에 후디 대신 입거나 블랙 슈트 위에 코트 대신 컬러풀한 카디건을 매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해볼 것을 권한다.
4. LET'S PARTY
연말 홀리데이 시즌을 장식했던 글리터 룩이 올해엔 조금 일찍 모습을 드러냈다. 에트로 런웨이에 등장한 레트로 디스코풍의 컬러 메탈릭 팬츠부터 번쩍이는 광채로 시선을 압도하는 돌체 앤 가바나의 슈트, 무대 의상을 연상시키는 셀린느의 실버 메탈릭 재킷과 모스키노의 컬러풀한 글리터 팬츠 슈트 등밝고대담한글리터피스들은다소 유난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뜨거운 여름밤 풀 파티에 이보다 완벽하게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는 없을 듯하다.
5. SKIRT FOR MEN
스커트와 드레스는 이제 더 이상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니섹스에서 시작해 젠더리스, 젠더 플루이드를 거치며 패션계는 남성 역시 여성처럼 다리를 드러낼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외치고 있다. 그 증거는 런웨이에 차고도 넘친다. 마치 1960년대 미니스커트를 이은 듯한 마이크로 쇼츠를 선보인 프라다를 필두로 여성이 입어도 멋스러운 풀스커트가 등장한 로에베와 루이비통, 한 단계 더 나아가 신성한 의식을 치를 때 입을 것 같은 화이트 튜닉을 입은 릭 오웬스와 펜디의 모델들까지. 비록 대중적인 패션은 아닐지라도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고 있음에 경의를 표한다.
6. SLEEVE-FREE
패션 위크 기간 동안 스트리트 스타일의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민소매 스웨터가 런웨이에서 다채롭게 변주되며 그 인기를 증명했다. 사실 프라다와 마르니를 비롯한 여러 디자이너들이 깔끔한 스웨터 조끼를 선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코지한 니트 스웨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버버리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건장한 모델들은 남성미를 자랑하며 테일러드 베스트 디자인의 슬리브리스 톱으로 2000년대 무드를 연출했고, 젠지 세대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쿠레주 컬렉션은 슬리브리스 버전의 바이커 재킷을 보는 듯한 화이트 베스트로 시선을 끌었다. 이보다 더 과감한 디자인도 눈에 띈다. 화이트 탱크톱을 연상시키는 슬리브리스 톱을 선보인 돌체 앤 가바나는 상의 위에 두툼한 코르셋 벨트를 레이어드해 젠더 플루이드 룩을 선보였고, 이 유행의 선두에 섰던 프라다는 스퀘어 네크라인에 시그니처 삼각 로고를 반영한 모던한 디자인의 슬리브리스 톱을 내세웠다(라프 시몬스의 미니멀한 감각이 엿보였다). 무엇보다 이 모든 슬리브리스 웨어는 셔츠나 티셔츠와 레이어드하지 않고 단독으로 입었을 때 가장 쿨하다는 사실. 이 말인즉, 올봄엔 복근보단 섬세한 팔 근육을 만드는 데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다.
7. BIG SHORTS
지난 여름,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던 버뮤다 쇼츠의 인기가 올해에도 쭉 이어질 전망이다. 대부분의 컬렉션에 반바지가 등장했는데, 틱톡에서 반짝 인기를 끌었던 마이크로 쇼츠보다는 넉넉한 빅 사이즈 쇼츠가 강세다. 이 아이템의 장점이자 특징은 스타일과 무드를 가리지 않고 리얼 웨이에서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는 것. 파자마나 추리닝을 연상시키는 스트링 팬츠부터 테일러드 재킷과 매치하는 슈트 쇼츠까지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덕분에 한 벌로 맞춰 입는 것 보다 상하의를 다른 소재나 무드로 연출할 때 더욱 멋스럽다. 예를 들면, 루이 비통처럼 컬러풀한 스포츠 쇼츠에 연미복을 연상시키는 셔츠와 재킷, 하이톱 스니커즈를 매치한다거나, 카사블랑카 컬렉션을 참고해 심플한 화이트 쇼츠에 스카잔을 입어도 좋다. 이런 방식이 부담스럽다면, 에르메스처럼 코지한 니트 스웨터에 가죽 쇼츠만 매치해도 꽤 스타일리시해 보인다. 여기에 팁을 하나 더하자면, 버뮤다 쇼츠는 하이웨이스트보단 로우 웨이스트로 골반에 살짝 걸쳐 입을 때 더 힙하다.
8. BIGGER IS BETTER
올봄 남성복 실루엣의 핵심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크고 편하게’이다. 이 법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아이템은 바로 셔츠다. 몸에 딱 맞는 테일러링 셔츠에서 벗어나 여성성을 가미한 튜닉 스타일이나 드레시한 맥시 슬리브를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전의 셔츠는 재킷 속에 입는 이너웨어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시즌엔 아우터로서 그 역할이 확대되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어느 때보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디자이너들이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9. BACK TO BLACK
눈이 시릴 만큼 쨍한 컬러가 컬렉션에 리듬감을 부여한다면, 쇼의 시작과 피날레에 등장한 시크한 블랙 룩은 흥분을 가라앉히는 안정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클래식 테일러링의 귀환이 미니멀리즘과 맞물리면서 디자이너들이 이를 표현하기 위한 완벽한 컬러로 블랙을 선택한 것이다. 디올 맨의 킴 존스는 하우스의 상징인 오블리크 슈트를 재해석했으며, 생 로랑의 앤서니 바카렐로는 그의 장기인 관능적 무드의 스키니 피트를 미니멀한 블랙 룩으로 표현했다. 재미있는 점은 대부분의 블랙 슈트에 셔츠나 넥타이를 매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블랙 테일러링 룩이 유난히 섹시해 보였던 건 바로 이러한 스타일링 스킬 덕분이 아니었을까?
10. CUT-OUT
패션계의 뜨거운 관심 속에 쿠레주의 신임 아티스틱 디렉터로 지명된 니콜라스 디 펠리스. 그가 새롭게 선보인 남성 라인 중 인스타그램을 뜨겁게 달군 스타일링은 다름 아닌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컷 아웃 톱에 니트 팬츠를 매치한 룩이었다. 물론 컷아웃 기법을 활용해 디자인과 성별이 모호한 스타일은 쿠레주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휠라와 협업한 와이/프로젝트의 로고 톱과 버버리의 블랙 슬리브리스 톱, 릭 오웬스의 화이트 톱에도 어김없이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과감한 패션이지만, 안에 무엇을 레이어드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니, 스타일링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editor 김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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