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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사연 있는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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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는 “그냥 좋아”라고 말하기보다 “그래서 좋아”라고 말하는 쪽입니다. 좋아하는 물건마다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연은 바로 ‘사람’.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북촌 한옥마을의 언덕을 걸어 올랐습니다. 숨이 가쁠 정도는 아니지만 운동 부족인 현대인에겐 꽤 가파른 경사입니다. 북촌 한옥마을에 처음 와보는 것도 아닌데 오늘은 이역만리에서 놀러 온 관광객마냥 가슴이 설렙니다. JTBC의 간판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마크 테토의 북촌 집에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선정릉이 보이는 강남의 고층 아파트에 살 때도 부족한 건 없었어요. 다만 친구들을 초대하기엔 공간이 여의치 않았죠. 그렇다고 딱히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친구가 한옥마을에 빈집 구경을 가자고 해서 따라왔다가 이 집을 보게 된 거예요. 이런 한옥에 살면 친구들도 초대할 수 있고, 한국 문화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사를 결심했어요.”




끔찍한 한옥 사랑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신라 시대 토기라든가 조선 시대의 고가구, 무늬가 다 다른 수막새 컬렉션 등을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집주인이 벽안의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됩니다. 집안 곳곳에서 드러나는 취향에는 일관성과 확고함이 묻어납니다. “한옥에 이사 오기 전에는 제 취향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떤 물건을 사도 그게 왜 마음에 드는지 굳이 생각해본 적이 없죠. 그런데 여기 살면서부터 제 취향이 점점 진화되고 명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작년 이맘때쯤엔 한옥에 어울리는 살림살이들을 구하러 다니느라 한참 동안 바빴다는 마크 테토. 물건을 고를 땐 나름의 기준이 있었는데, 한옥에 어울리면서도 자신과 물건 사이에 연(緣)이 있는 것이길 바랐습니다. “이 식탁은 제가 직접 디자인해 맞춘 거예요. SNS를 뒤지다가 비스트럭처의 황민혁 디자이너를 우연히 알게 되었죠. 메시지를 보낸 뒤 그와 직접 만나게 되었어요. 식탁뿐만 아니라 지금 앉아 있는 의자와 거실에 있는 팔각 모양 테이블도 전부 황민혁 디자이너와 함께 제작한 가구들이에요. 가구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안 서로 잘 통한다는 걸 깨닫고 결국 친구 사이가 됐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차를 내온 머그가 눈에 익어 반갑습니다. 마크 테토의 SNS를 통해 익히 봐왔던 것으로 도예가 지승민의 작품입니다. “그릇을 사러 갔다가 ‘지승민의 공기’라는 브랜드를 알게 됐는데, 이 물 주전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감동받았어요. 그러다 ‘이걸 만든 사람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연락했죠. 그의 작업실에도 방문하고 그릇도 구매했어요. 무엇보다 그릇을 하나하나 열심히 만드는 지승민 작가의 모습에 또 한 번 감동받았어요. 그러다 지승민 작가와도 친구가 됐어요.” 아일랜드 테이블 밑의 그릇장을 펼치니 소스 종지부터 대접까지 모두 그의 작품들입니다. 한식과 양식에 두루 어울리는 것들로 조목조목 골라 알차게 구입했습니다.



(위) 도예가 지승민이 만든 생활 자기들. 가운데 물 주전자는 후에 지승민 작가와의 연을 이어준 매개체가 되었다.

(아래) 1500년 전에 만들어진 신라 토기. 조선백자보다 인기는 없지만 흙의 투박함에서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좋아하는 물건이다.


문득 생각났는지 작년 이맘때쯤 SNS에 올렸던 사진 한 장을 찾아 보여줍니다. 미국의 전통적인 추수감사절 문화와 한옥의 정취를 나누고 싶어 친구들과 함께 식사한 날 찍은 저녁 상차림 사진으로, 그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 보이는 물건들은 다 인연이 닿아 제 식탁으로 오게 된 것들이에요. 그래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늘 뿌듯해요.” 사진 속의 음식을 누가 요리했는지, 접시는 누가 만들었는지, 이 집은 누가 지었는지, 또 식탁은 누가 만들었는지 물어보면 그것만 가지고도 1시간은 거뜬히 대화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사진 속엔 어디서 왔는지 모를 그런 ‘사연 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크 테토에게 이 사진은 음식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찍은 사진입니다. “물건을 들이면서 생긴 인연들로 더 행복해졌어요. 이 물건을 만드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그래서 그 사람이 이걸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과정… 지금 커피를 마시는 이 머그를 사용할 때마다 내 친구 지승민이 떠올라요. 그리고 그가 이걸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알고 있어서 기뻐요.”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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