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는 지금 가장 핫한 여행지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롤링 스톤스가 쿠바 땅을 밟았고, 지난 5월에는 샤넬이 구 프라도 거리에서 2017 크루즈 컬렉션을 개최해 화제가 된 곳이기도 하죠. 흥이 넘치는 낙천적인 쿠바인들과 오랜 세월이 빚은, 낡았지만 정감 어린 거리 풍경, 눈부시게 작열하는 태양빛이 가득한 쿠바는 더 늦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입니다. 그중에서도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도시, 아바나와 트리니다드로 떠나봤습니다.
쿠바를 지칭하는 명사나 형용사는 굉장히 많습니다. ‘낭만적인, 올드 클래식, 빈티지한, 낙원, 체 게바라, 소셜 부에나 비스타 클럽’ 등. 마치 쿠바를 전부 아는 듯한 기시감이 점령하는 독보적인 나라죠.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의문 부호가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두 가지 화폐가 버젓이 통용되는 변칙, CDR ; Comités de Defensa de la Revolución(혁명방위위원회)이라는 감시 체제하에 있는 공산주의, 한 달 월급 25달러로 생활하는 생존력. 알쏭달쏭하기보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 되레 모험심을 발동시켜 쿠바행 티켓을 끊게 만듭니다. 허나 실전에는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바나 공항에서 시내를 중매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를 타고 허허벌판과 혁명 플래카드를 지나치면서 기시감은 처절히 배신당할수도 있어요. ‘정말? 이게 진짜 쿠바야?’ 자유보단 혁명이, 낭만보단 허무가 가장 먼저 마중 오는 까닭이죠. 여행 후엔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오매불망 ‘쿠바 앓이’를 겪습니다. 그리도 벗어나고 싶고 정나미가 떨어진 이 땅이 피부 속에 아로새겨진 것처럼요. 끌림이자 미련인 것입니다.
쿠바엔 두 가지 대표 도시가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 그 양날의 검을 지닌 아바나 Habana와 스페인 식민 도시 흔적에 쿠바인의 정열이 덧씌워진 트리니다드 Trinidad 입니다. 1950년대 컨버터블이 들썩이는 아바나의 핵심은 기시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쿠바의 모든 콘텐츠가 총집결해 있죠. 반면 트리니다드는 우리가 몰랐던, 눈만 마주쳐도 웃는 살가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불어 트리니다드에서 반나절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산타클라라Santa Clara는 21세기 쿠바를 먹여 살리는 체 게바라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곳이죠.
쿠바의 기시감을 따라간 하드보일드 아바나
언밸런스한 탑의 아름다움, 대성당이 자리한 광장
여행자가 몰려드는 아바나는 지리적으로 세 가지 지구로 구분됩니다. 올드 아바나(아바나 비에하Habana Vieja)와 센트로 아바나Centro Habana, 그리고 베나도Venado죠. 올드 아바나가 아바나의 기시감을 고스란히 간직한 1950년대에 멈춰 있다면, 신시가지인 센트로 아바나는 쿠바인의 상업 지구가 몰려 있는 1980년대, 베나도는 서쪽 미라마르Miramar를 중심으로 관광산업에 맞춰진 21세기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1. 콘서트홀로 변신한 산 프란시스코 성당 2. 더위를 잊은 말레콘의 청춘 3. "사진 찍을래요"하고 1CUC 벌이에 나선 모델들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올드 아바나의 축은 광장인데요. 4개의 광장이 올드 아바나의 꼭지점이 되어 여정의 빗장을 엽니다. 바로크 스타일의 건축물이 있는 대성당 광장과 길거리 노점이 즐비한 아르마스 광장Plaza Armas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높은 천장의 콘서트홀이 압도하는 산 프란시스코 광장과 35m 타워에서 아바나를 조망할 수 있는 비에하 광장Plaza Vieja이 곁을 나누며 길은 동서남북 잔가지 치기를 하죠. 쿠바의 광장廣場은 ‘많은 이들이 모일 수 있게 한 빈터’라는 정의를 명확히 수행하진 못해요. 모인다기보단 흩어지죠. 잔가지 친 골목에 들어찬 고단한 현지인과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여행자 사이에선 마치 국경선 같은 묘한 감정선이 흐릅니다. 물론 타협점은 있어요. 바로 오비스포Obispo 거리입니다. 뭐든 느리고 천천히 흐르는 수도에도 타임랩스가 출몰하는 곳이죠. 생활 소음이 높은 데시빌을 찍다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라이브 음악이 걸음을 춤추게 합니다. 카스트로의 유일한 미국인이었던 헤밍웨이 역시 이 길을 사모했어요. 참고로 헤밍웨이는 1930년대부터 쿠바 혁명이 일어나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20여 년간 아바나에 머물렀습니다. 거리는 매일 밤 애주가 헤밍웨이가 더블 샷 럼을 넣은 다이키리 칵테일을 마신 라 플로리디타La Floridita로 시작해 그가 7년간 집필의 고뇌를 뿌린 호텔 암보스 문도스Hotel de Ambos Mundos의 511호로 끝이 납니다.
1. 아바나의 낭만을 보여주는 관광객용 마차 2. 1970년대에 멈춘 듯한 아바나의 일상 3. 헤밍웨이의 모히토가 있는 바, 라보데기타델메디오. 그저 마케팅의 술수로 유명해진 이곳에도 트로바 공연은 끊이지 않죠.
비라도 내리는 날엔 오비스포가 아바나 최고의 명당입니다. 비를 피한 현지인이든 여행자든 모두 한 지붕 아래 뛰어듭니다. 카페든, 바든, 레스토랑이든 장소는 중요치 않아요. 트로바Trova(쿠바 전통 민요)의 기타가 튕겨지고, 한낮의 모히토는 기약 없이 비워지며, 카리브해 태양보다 더 이글거리는 현지인의 스텝은 결코 뒤엉키지 않습니다. 호흡 장애를 일으키는 습도 아래 울려 퍼지는 쿠바의 리듬은 불시에 어디서나 펼쳐지는 자유죠. 아르마스 광장에 진입하니 바람이 몸을 잡아당깁니다. 말레콘Malecon이 부르는 바람이죠. 8km의 방파제 겸 해안도로인 말레콘은 쿠바 애환의 입구이자 출구입니다. 18세기 스페인 항구로서의 당당한 기세는 멀리 떨어진 모로성에 남아 있어요. 아비와 아들은 팩으로 된 럼과 담배 한 갑을 사이에 두고 말레콘을 숨죽이며 응시합니다. 이름없는 강태공은 입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웃통 벗은 사내의 다이빙에 구김 없는 박장대소가 터져 나옵니다. 도로 건너편엔 빨래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사람이 살 거라 생각되지 않는 해진 건물들이 몸을 부대끼고 있죠. 이곳을 가득 채우는 건 아무것도 없는 쿠바, 그 쿠바인 자체입니다. 말레콘의 파도는 수시로 이들을 넘보지만, 이들의 ‘무욕의 행복법’만큼은 쓸어가지 못하죠.
반전의 매력을 지닌 곳, 트리니다드
1. 당나귀 위에서의 낮잠, 트리니다드에 깊이 잠재된 평화 2, 마요르 광장 주변 주택의 적갈색 지붕과 길의 환희 3. 빈티지한 멋이 가득한 과일 가게
아바나에서 트리니다드로 오니 문득 섭섭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바나에서 그리 끈질기게 따라붙던 히네테로(일명 ‘삐끼’)의 실종이요, 올드 카가 점령한 아스팔트의 부재 덕분입니다. 마치 귀향하는 기분이었어요. 흐드러지게 핀 차코니아 꽃나무와 자갈길, 파스텔 톤 집에 마음이 설렜습니다. 가슴골에서 돈을 꺼내는 현지인의 행동에서 머리맡의 냄새를 떠올렸죠. 이곳에서 쿠바가 섬이란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이방인을 와락 끌어안는 정겨움이 창살에조차 서려 있었습니다.
트리니다드의 여행은 단출합니다. 터미널이 있는 마을 초입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이 왕처럼 서 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유려한 컬러의 집들이 뻗어 나가고 꿈꾸는 듯한 산책로가 이어져요. 이 산책에 불을 당기는 건 낮의 옥탑과 밤의 살사, 이 두 가지 명제입니다. 낮의 옥탑은 사탕수수 부호였던 칸테로 Cantero의 저택이자 트리니다드의 역사 박물관Museo de Historia Municipal부터 바티스타 정권에 항거한 학생 봉기에 관련된 혁명 박물관Museo Nacional de Jucha Contra Bandidos은 물론, 이름 있는 교회라면 어디에서나 준비된 콘텐츠입니다. 테라코타 타일의 적갈색 지붕 옷을 입은 집들 사이로 야자수와 뭉게구름, 먼 발치의 설탕 계곡은 모두 적재적소의 자연과 삶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정적인 낮에 비해 밤은 동적이죠. 트리니다드의 밤은 제법 일찍 찾아옵니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오후가 되면 자동 반사적으로 마요르 광장 넘어 소리의 근원을 따라가게 되는데, 그 주인공이 ‘카사 델 라 뮤지카’입니다. 중앙공원 근처의 계단 중앙을 중심으로 무료 공연 형태로 진행되죠. 카사 델 라 뮤지카만이 동네의 밤을 들썩이게 하는 건 아닙니다. 계단을 내려와 왼쪽으로 연결된 길에선 살사, 룸바, 맘보 등 쿠바의 음악과 춤이 무한궤도처럼 펼쳐지죠. 가정집을 개조해 1CUC(0.9달러)의 피나콜라다를 기막히게 제조하는바 역시 밤의 끝을 잡는 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1. 혁명 박물관 역할을 겸비한 트리니다드의 랜드마크, 산 프란시스코 교회 2. 새장 같은 창살 사이로 쿠바인의 일상이 지저귑니다. 3. 겨우 형체만 남은 산타 아나 교회 내 아치
트리니다드에 오래 머문다면, 쿠바의 영웅 체 게바라의 도시 산타클라라로의 외도도 좋습니다. 산타클라라는 체 게바라가 혁명 완성의 기반을 닦은 곳으로 특별한 관광거리는 없지만 오로지 체 게바라를 느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기념비를 비롯해 공원으로 조성된 체 게바라 추모관Monumento Ernesto Che Guevara을 목표로 나선 여정이 결코 억울하지 않아요. 특히 박물관 내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Alberto Korda가 찍은 체 게바라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그가 듬직한 체격과 영민한 눈빛, 베일 듯한 카리스마를 지니게 된 건 역사의 격랑 때문입니다. 두 도시 사이 고개에 위치한 산타클라라 전망대에 들르면, 쿠바의 태곳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비냘레스Vinales를 넘볼 만한 원초적인 풍경도 감상할 수 있어요. 다시 트리니다드로 돌아오니 동네는 북소리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아, 이미 롤링 스톤스의 공연에 이어 샤넬 컬렉션이 쿠바를 거쳐 갔어요. 내년 할리우드 영화 두 편의 로케이션 장소로도 선택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열기 속에서 ‘내 이름은 쿠바다’란 명제는 언제까지 건재할까요? 모르긴 해도, 덕분에 여행을 서두를 동기는 확실해졌습니다.
자, 지구상 어디와도 대체할 수 없는 쿠바 여행에선 두 가지 전제 조건을 기억하세요. 쿠바의 속도감대로 여유 있는 일정을 안배할 것, 그리고 뭔가를 본다기보다 느끼는 여행의 원초적인 가치에 무게를 둘 것. 쿠바와 여행자 사이에선 오늘도 카리브해의 짭조름한 스토리가 탄생 중입니다. 그 미지로부터 시작합니다. 쿠바 여행에서 어떤 답을 찾거나 볼거리에 안식하는 것은 어리석은일! 그저 이렇게 말할 뿐. “이것이 쿠바야. 모든 것이 가능하지!”
TIPS
쿠바에선 공식적으로 CUC(세우세)와 MN(CUP, 모네다 내셔널)의 두 가지 화폐가 통용됩니다. CUC는 미국과의 경제 봉쇄 후 달러를 대체하는 외화벌이용 화폐로 등장했는데, 현 개방의 물결에도 여전히 화폐는 두 쪽이죠. 통용되는 곳이 다릅니다. 길거리 음식점이나 현지인이 붐비는 카페나 레스토랑에선 대부분 국영 화폐인 MN을 사용해요. 여행 초기엔 $로만 표기된 가격표 때문에 CUC와 MN 사이에서 대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일례로 길거리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1MN인데, 이를 모르고 1CUC를 내도 잔돈을 거슬러주거나 잘못 냈다고 가르쳐주는 친절은 없어요. 모히토 한 잔을 5CUC에도, 5MN으로도 마실 수 있는 게 바로 쿠바입니다. 1CUC가 24MN, 고정 환율입니다.
STAY
아바나의 말레콘 뷰를 품은 내셔널 호텔Nacional Hotel은 세계적인 위인이 선택한 언덕 위 호텔입니다. 프랭크시나트라의 214호, 콤파이 세군도의 224호, 에바 가드너의 225호, 월트 디즈니의 445호 등 실내는 격조로 중무장한 여러 건축 양식이 혼재돼 있어요. 이곳에 머물지 않더라도,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 속 로사 노티카Rosa Nautica 바는 충분한 이용 가치가 있습니다.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아바나만을 바라보며 마시는 모히토는 곧 사랑이죠.
[문의] www.hotelnacionaldecuba.com
유명인을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우는 호텔을 제외하면 에어비앤비의 진정한 모태가 되는 가정집 렌털인 ‘카사 파티쿨라르Casa Particular’가 대부분이죠. 버스 터미널에선 숙소 주인과 여행자의 가격 인하(!) 신경전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땅을 밟은 이후 현재 에어비앤비엔 300여 곳의 숙소가 등록되어 있어요. 호텔에서 궁극의 편안함을 만끽할 것이냐 혹은 카사를 이용해 현지인의 삶에 녹아들 것이냐는 당신의 선택. 그러나 쿠바에 왔다면 후자가 더 매력적입니다. 쿠바는 음식에 바칠 애정을 모두 칵테일에 소진한 덕에 지방으로 갈수록 솜씨 좋은 카사 주인의 한 상차림 생각이 간절해지기도해요.
[문의] www.airbnb.com
EAT & DRINK
아바나에 있는 로스 나르도스Los Nardos는 웨스턴풍의 패밀리 레스토랑과 흡사한 인상을 줍니다. 허세가 많은 CUC(외국인 전용 화폐) 레스토랑 중 가장 이성적인 가격, 최고의 질과 양을 자랑하죠. 백과사전과 다를 바 없는 메뉴판에 놀라지 마세요. 이곳 스태프 역시 쿠바에서 보기 힘든 ‘손님은 왕’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문의] +53-7-8632985
도스 에르마노스Dos Hermanos는 1894년 태생의 각종 럼 베이스 칵테일에 도전할 수 있는 바. 아바나의 웬만한 바에서 내는 칵테일보다 럼의 비중이 좀 더 높은 편입니다. 1930년 스페인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가 이곳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고 해요.
[문의] +53-7-8613514
ENJOY
트리니다드의 사탕수수는 쿠바를 지탱하는 생산업 중 하나였습니다. 19세기 초 사탕수수 농장으로 수혜를 입은 독일인 칸테로의 사택이었던 이곳은 현재 트리니다드 역사 박물관으로 확장, 통합되었죠. 방과 방 사이, 여러나라에서 수집한 장식품 컬렉션부터 트리니다드의 역사 유물이 아케이드 형식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클라이맥스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좁은 통로형 계단을 올라가 맛보는 해방감. 옥탑 위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트리니다드 풍경에 감동하게 됩니다.
[문의] +53-41-994460
writer 강미승(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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