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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디자이너 '폴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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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IN WONDERLAND


디자이너 폴 스미스와 얘기했습니다. 장난스러운 제스처, 간결하지만 위트 넘치는 대답. 그 속에는 뼈 있는 말과 진심 어린 말들이 혼재했죠. 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폴 스미스만의 반짝이는 세계에 대하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오는 6월 6일부터 8월 25일까지 폴 스미 스Paul Smith에 관한 대규모 아카이브를 모은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Hello, My Name is Paul Smith>전이 열린다. 이는 DDP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서울디자인재단과 런던 디자인 뮤지엄이 공동 주최한 전시로, 지난 2013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처음 개최된 후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고 서울에서 11번째로 열리는 것이다.

지난 4월, 전시의 주인공인 폴 스미스가 일찌감치 내한해 기자간담회와 강연 등 다양한 형태로 한국 팬들을 만났다. 이를 통해 전시 소개뿐 아니라 그의 작품세계와 디자인철학, 더 나아가 수십 년간 거침없이 달려온 그의 삶과 그 소회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스토리는 첫 파리 패션 위크에 대한 일화다. 정식으로 초대받지도 않았고, 규모가 큰 쇼를 연 것도 아니니 데뷔라고 할 순 없지만, 파리에서의 첫 번째쇼는 그 어떤 디자이너들의 컬렉션보다 더 참신했다. 당시 그는 패션쇼를 열거나 큰 쇼룸에 옷을 걸 만큼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호텔방을 빌려 밤에는그곳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침대 위에 까만 천을 덮고 그 위에 가져간 작품들을 올려놓고 전시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옷을 보러 온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고, 목요일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마침내 첫 고객이 나타났다. 이것이 폴 스미스의 미약한 시작이다. 폴스미스는 현재 전 세계 73개국 매장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글로벌 패션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영국 패션을 세계에 널리 알린 공을 인정 받아  2000년에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그동안 수많은 패션 하우스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거대 기업에 흡수되기 도 했지만 폴스미스는 여전히 그의 진두지휘 아래 굳건하게 자리하고있다. 정식으로 패션 공부를 하거나 트레이닝을 받지도 않은 그가 이렇듯창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방한 내내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그의 철학과 몇 마디 조언으로 대신한다.

“표절하지 말 것(Don’t Copy)!” “절대 미루어 짐작하지 말 것(Never Assume)!”, 그리고 “당신은 모든 것에서 영감을 찾을 수 있다(You Can Find Inspiration in Everything)”가 바로 그것이다.



‘Hello, My Name is Paul Smith’, 마치 신진 디자이너가 자기 소개를 하는 듯한 전시 타이틀이다. 기자간담회에서“세 상 사람 모두가 날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혹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허영이나 오만함을 경계하는 내 성격을 잘 드러내는 예라고 생각한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은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를 알 거라고 믿고 있지만, 꼭 그렇다는 법은 없지 않나? ‘절대 미루어 짐작하지 말 것 (Never Assume)!’, 이 또한 나의 철학이다. 그래서 전시 타이틀을 무엇으로 할거냐는 질문에 ‘Hello, My Name is Paul Smith’가 어떻겠냐고 했다. 그보다 더 복잡할 이유가 없었다.


전시 포스터 사진도 무척 위트 넘친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진, 팔짱을 낀 사진,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 등 여러 가지 포즈 를 취하고 있는 폴 스미스가 다중적으로 겹쳐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

이 사진은 진정으로 나를 묘사한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데다 아주 장난스럽고 긍정적이다. 단 한 장의 사진보다는 여러장의 사진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통해 내 캐릭터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전시는 2012년 이후 두 번째다. 이번 전시는 당신을 표현하는 수많은 오브제는 물론, 어떻게 영감을 얻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다양한 매개체를 동원해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내가 어떻게 일하고, 결과물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과정을 훨씬 더 세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내가 어떻게 주위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지, 그리고 그 영감을 어떻게 옷과 핸드백 또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시키는지 살펴볼 수 있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전시에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을 거다.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런던에 있는 당신의 작업실을 재현한 섹션이다. 그간 수많은 도시를 순회한 당신의 전시 와 기존 인터뷰를 통해 작업실에 온갖 만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특히 스스 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기에 그런 공간에서도 혼란스럽지 않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집중해서 하는 일,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오브제가 있을 것 같다. 무엇인가?

쉽게 고를 수 없다. 최근 누군가가 내 사무실이 마치 바다 같다고 묘사했다. 색다른 사물들의 파도가 항상 오르내리고 또 다른 새로운 물건들이 내 책상이라는 모래사장으로 밀려온다. 나는 매일 다른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물론 자주 보는 책이나 물건들이 있지만, 내 사무실에 있는 오브제들에 선호도를 매길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어떤 물건을 집어 들어 무슨 영감을 얻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소장품, 작품, 수집품 등 아카이브를 정리하며 전시를 준비 할 때마다 본인의 삶을 어쩔 수 없이 되돌아보게 될 것같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나는 그다지 향수에 젖어 사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전시회 속의 몇몇 작품들은 내 인생과 커리어의 특별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처럼 뒤돌아보지 않는다. 패션처럼 창의성을 중시하는 산업 현장에서 일하면 끊임없이 미래를 바라봐야만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해냈다고 안주하는 순간, 그 자만심이 당신을 집어삼켜버릴 것이다. 



당신의 작업실엔 오브제가 너무 많아서 그걸 지구 반대편에서 재현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물건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그중 어떤 것들은 국외로 가지고 나가기 위해 검역이나 허가가 나길 기다려야 했던 것들도 있을 만큼 다양하다.(웃음) 심지어 너무 많아서 그게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물건들을 전부 서울로 가져온 보람이 분명 있었다.이 다양한 조합의 오브제들을 통해 17세의 관객이든, 30세의 관객이든, 50세의 관객이든, 모두 일상에 커다란 흥미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통해 폴 스미스라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고 디자인해 나가는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얻고 일하는 나만의 특별한 방식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기자간담회에서 “자의식 과잉을 경계하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셀피Selfie, SNS중독 등 요즘 지구의 인간들은 너무 자기애에 빠져 사는 것 같다. 오늘 먹은 음식, 입은 옷, 놀러 간 곳 등... 솔직히 누가 상관하겠나? 그런 ‘보여주기’가 자기애를 증명하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인스타그램은 한다. 나는 매일 사진을 찍으면서 돌아다니니까. 그러나 거기에 나에 관한 사진은 아무것도없다. 내가 일상 속에서 찾아낸 흥미로운 사물과 자연, 색감 등이 전부다. 그리고 그걸 통해 다시 영감을 얻는다.


패션뿐 아니라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라고 했는데,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이슈가 있나?

폴스미스는 전 세계 73개국에 매장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글로벌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그중 ‘지속 가능(Sustainability)’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깨끗한 지구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 회사 차원에서도 유기농 코튼 사용이나 재활용(Recycle) 등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20대 초반에 부티크를 오픈해서 50여 년이 흘렀다. 30, 40, 50, 60, 그리고 얼마 전 70이 되는 해를 보냈다. 각각의 시기에 생각나는 가장 큰 변화를 꼽아본다면?

폴 스미스에 대한 흥미로운 점은 로켓처럼 급격한 스타일의 변화나 성장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고 유기적이었다. 나는 정교한 사업 계획을 세운 적이 없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그저 매일 아침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눈을 뜰 뿐이다.


50여 년간 트렌드도, 사회 분위기도, 시장도 크게 바뀌어 왔다. 많은 패션 하우스들이 수석 디자이너를 바꾸고, 스타일을 바꿔가며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 안달하지만 폴 스미스만큼은 늘 초연하게 브랜드 가치를 유지해온 것 같다. 그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만, 변화하는 시대에 앞서 ‘우리도 뭔가 바꿔야 하지 않을까?’라는 조바심이 생길 때가 있지 않나? 그럴 때 초연해지는 방법이 있다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재창조하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브랜드들이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큰 변화들을 필요로 한다는 걸 이해하지만, 내게 있어 변화는 내 안에서 비롯된다. 나는 변화와 진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며, 항상 작은 방법으로 그것을 이루고 있다. 당신은 계속해서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어야 하며, 성공했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고맙게도 내 아내 폴린Pauline은 항상 내가 자제력을 잃지 않도록 아주 큰 도움을 주고있다.


요즘 당신에게 ‘인생의 낙’은 무엇인가? 최근 가장 몰두하고 있거나 취미 삼아 하는 일들이 궁금하다.

매일매일의 다양함이다. 매일 출근해서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한다.


만약 한 달간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당신은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생각인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고 싶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임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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