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적인 삶, 복순도가 김민규
모든 인간은 섬이다. 그러나 그 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복순도가에서 빚는 술은 섬과 섬을 연결하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한다.
술이 약하진 않지만 즐겨 마시지도 않는 집 저녁상에 언젠가부터 반주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막걸리와 나무 사발. 휘몰아치듯 살아온 아버지의 젊은 날에는 자주 볼 수 없었던 풍경이죠. 반주가 있었다면 그것은 업무의 연장선상이었거나, 일상의 쓰린 상흔을 더 쓴 술로 덮기 위한 목적이었으리라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저녁상이 차려지면 냉장고에 곱게 넣어둔 생막걸리를 꺼내 식탁에 내려놓고, 좋아하는 나무 사발에 술을 반쯤 채웁니다. 그런 여유로운 모습이 생경하지만, 나 또한 저녁 상에 반주를 올리는 나이가 되니 그런 것도 반갑더군요.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저 섬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술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담에서 공식 건배주로 선정된 바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 브랜드 복순도가는 술 빚는 사람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김민규 대표는 어머니가 집에서 빚던 술에 어머니 이름, 그리고 그 술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가都家’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한국 사람은 마음도 삭힌다’는 할머니의 말씀처럼 자라온 모든 순간을 통해 발효의 섭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발효된 술이 그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몸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사람을 이롭게 만드는 공간을 만들고자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김민규가 소개하고 있는 ‘발효 건축’이라는 콘텐츠는 다소 낯설게 들리지만, 그가 직접 건축한 울산 울주의 복순도가 양조장, 그리고 최근 개장한 노들섬의 복순도가 펍에 방문해보면 발효되는 건축을 직접 목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순도가는 그 공간 안에서 마을 사람들이 생산한 쌀로 술을 빚고, 그렇게 빚은 술로 농촌 사람들과 도시 사람들을 만나게합니다. 이곳의 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발효되고 있으며, 누군가의 삶과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노들섬에서 복순도가의 발효 콘텐츠를 선보이게 됐다. 다소 생소한 곳인데 들어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람들은 건축가라는 직업이 집을 디자인하고 빌딩을 올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건축을 전공한 입장에서 건축의 영역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합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많은 것들과 공간 안에 있는 것들 모두 건축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내 관심사는 하드웨어와 함께 그 공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있었어요. 부산의 F1963이라는 공간 역시 원래는 폐공장이었던 곳을 새로운 재생 건축의 일환으로 리모델링한 것으로, 복순도가 막걸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들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우리만의 콘텐츠로 그 공간에 넣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노들섬은 원래 철새들이 잠시 머무는 기착지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텃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역시 수십 년간 버려졌던 섬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것으로, 이 공간에 맞게 우리의 콘텐츠를 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간 마케팅 역시 건축의 일환이라는 얘기에는 크게 공감이 가네요.
건축가로서 내가 가장 관심 있는 분야가 바로 공간 마케팅이었습니다. 직접 건물을 짓지 않아도 그 공간을 채워 나가고 그곳에 어울리는 마케팅을 하는 것이 내겐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죠. 노들섬 입점을 처음 거론했을 때 버려진 곳에 왜 들어가냐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나는 노들섬이 충분히 훌륭한 공간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곳이라 믿었죠.
노들섬의 어떤 부분을 통해 그러한 믿음을 확신할 수 있었나요?
해외의 많은 주류 박람회나 전시장에 가서 느낀 점은 반드시 주류가 주류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브랜드가 문화, 예술과 어우러져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도 하나의 큰 브랜드 마케팅입니다. 꼭 숍이나 백화점, 몰에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이렇게 서울 중심의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즐길 수 있다는게 내겐 가장 큰 메리트로 다가왔습니다. 이 곳에 놓인 우리가 만든 가구들을 누구든, 어떤 행사가 열리든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바꿀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 유기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하나의 매개체가 되는게 복순도가의 역할이라 생각 했고, 건축가이자 회사 대표로서도 너무나 재미있는 건축이자 브랜드 마케팅이라 생각했습니다. 때론 돈이 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고, 혹은 무모해 보일수도 있지만 그런 콘텐츠를 찾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갈 것입니다.
방문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접근성이 뛰어나지 않은데도 생각보다 방문객이 많아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 목표는 우리 술을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경험할 수 있느냐이죠. 시음할 때 제품을 아끼지 않고 제공하는게 우리의 가장 큰 홍보 수단입니다. 아무리 자세히 설명하고 멋진 영상과 사진을 보여줘도 사실 막걸리는 맛을 봐야 아니까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방문객들이 ‘막걸리 펍’ 이라는 노들섬의 복순도가에 왔다가 기존의 흔한 펍이나 전혀 전통주 같지 않은 전통주 바가 있는 걸 신기해하는 바람에 그 자체로도 좋은 브랜드 마케팅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의 차별성 중 하나가 ‘막걸리 브랜드인데 이런걸해?’ ‘막걸리 브랜드가 디자인 페어에 있어?’ 이런 반응들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여담으로, 그 동안 지방에서 끙끙거리며 올라와 막걸리 페어에 참가해도 A막걸리와 B막걸리 사이에 있을 때 우리의 특별함이 잘 부각되지 않는다는 걸 몸소 체득했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엄 와인 페어로 유명한 홍콩 와인 페어에 참가했을 때는 조금 달랐죠. 전 세계 유명 와인메이커들이 참가한 그곳에 조그맣고 볼품없는 부스를 세워 우리 제품을 선보였는데, ‘도대체 코리안 라이스 와인은 무엇인가?’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의외로 큰 관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카테고리보다 다른 카테고리 속에 있을 때 우리 콘텐츠가 더욱 부각 돼 보이고, 생각지 못한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그 이후부터 아트페어 후원도 하고, ‘발효 예술’이라는 콘텐츠로 아티스트들과 함께 부스를 만들어 막걸리를 제공하고 판매했더니 의외로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또한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에도 기업 부스로 크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생산자의 관점에서 볼게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우리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 가는곳에 찾아가고 있습니다.
복순도가라는 브랜드로 지금까지 막걸리라는 단일 품목을 선보여왔다. 앞으로 브랜드 확장에 대한 고민도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복순도가라는 막걸리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끼리 만들어 마시던가 양주 형태에서 지금과 같은 제품 형태가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술도 많이 버릴 수 밖에 없었죠. 집집마다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순 있지만 제품화하는 건 또 다른 얘기인 것처럼 말이죠. 막걸리를 제품화하는 과정을 거쳤듯 탁주, 청주, 소주도 제품화하기 위해 굉장히 오랫동안 연구해왔습니다. 샘플링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고, 이곳 노들 섬의 저온 창고 안에 그 동안 실험했던 모든 샘플을 다 넣으려고 합니다. 정말 어디서도 맛본 적이 없는 술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술은 어떤 술인가요?
술에는 유통기한이 있는데, 우리 제품은 방부제를 넣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유통기한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복순도가 막걸리를 예로 들면, 유통기한을 20일로 표기해놓았지만 발효 식품이기 때문에 그 기간이 지나도 상하진 않습니다. 김치가 저온에서 숙성만 잘 되면 썩지 않듯 말이죠. 예를 들어 이곳에 막걸리 100병이 들어온다고 칩니다. 그날 팔리고 남은 술이 20병이라면 그 술은 이곳 저온 창고에서 계속 숙성될 것입니다. 그 막걸리들을 오래 숙성시키면 청주가 되고, 그 청주를 증류하면 소주가 됩니다. 그게 이곳의 콘셉트죠. 그런 술들은 아마 어디서도 맛본 적 없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술들이 될 것입니다.
editor 천혜빈
photographer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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